[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인사 잡음’ 없는 코리안심포니의 화음


 
지휘자 정치용이 지난해 9월 헝가리 부다페스트 리스트음악원에서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코리안심포니는 다음 달 2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취임 음악회를 열 예정이다. 코리안심포니 제공 ⓒOuriel Morgensztern


최근 주요 문화예술단체장 중 빈자리들이 부쩍 눈에 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긴 하다. 그럼에도 일부는 공석 기간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지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은 김학민 전 단장이 지난 7월에 갑작스레 사임한 뒤 아직까지 새로운 선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공립단체장 가운데에서도 가장 부침이 많고 시끄러운 자리여서인지 문화체육관광부는 선뜻 임명할 사람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공석인 국립극장장은 공모를 통해 결정되는 자리인데 현재 3명이 최종 후보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골치 아픈 단체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다. 2015년 예술감독이 사퇴한 이래 만 2년 공석인 상태이며 대표이사 자리마저 최흥식 전 대표가 문재인정부의 금융감독원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5개월째 비어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예술감독을 대신해서 공연기획을 꾸려가던 상임작곡가 겸 공연예술자문위원 진은숙마저 지난 2일 사의를 표명했다.

가장 내홍이 극심해 보이는 서울시향의 경우 지난달 서울시가 새 대표이사 선임을 위한 임원추천위원회를 꾸렸고 이달 말 공고를 내 후보자 선정에 착수할 계획을 세웠다. 예술감독직도 해외 후보자들을 초청해서 서울시향을 지휘하게 하며 꾸준히 심사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나라 국공립예술단 중 임원직이나 예술감독을 선출하는 방식이 가장 진보한 단체는 오케스트라다. 올해부터 코리안심포니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는 지휘자 정치용의 경우도 문화계 인사와 단원 대표 1명을 포함한 추천위원회가 추천한 2인의 후보자 중 한 명이었고, 이사회에서 최종적으로 선발된 사례다. 전문가들로 꾸려진 추천위원단과 이사회에 결정권을 부여하고 민주적인 절차로 진행해야 투명성을 더하고 선출 결과에 대한 잡음도 적을 수밖에 없다.

준국립단체가 된 이후 코리안심포니가 이런 절차를 도입한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예술감독은 절차를 알 수 없는 문체부 내 밀실회의를 통해 임명됐다. 한데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립오페라단 단장의 임명 과정이 지금 여전히 밀실에 감춰져 있다. 문체부 장관 임명직인 이 자리를 위해 문체부 공무원들이 전문가들에게 개인적으로 접촉해 추천을 받고 자문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누구에게 임명장이 돌아가든 어떤 기준으로 선출된 것인지, 누구의 지지에 의한 것인지는 현 시스템으로는 규명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사회가 있지만 정부에서 지명한 후보를 인준하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

공모를 통해 선출하는 국립극장장 자리 또한 허점이 많다. 이미 정권과 교감한 내정자가 형식적으로 공모에 응할 수도 있고, 추천 없이 능력 부족의 후보자들만 공모에 응할 경우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이 선출되는 것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온갖 잡음을 불사하고 문체부가 블라인드 임명 시스템을 유지하는 나름 복잡한 사정도 있겠지만, 과거 정권들은 바로 그 시스템을 이용해 이런 보직들을 코드 인사, 즉 정권에 도움을 준 비전문가들에게 베푸는 보상으로 활용해왔다. 은퇴를 앞둔 공직자나 기업가가 잠깐 머무르는 한직으로 인식되던 자리들에 뜨거운 경쟁이 불붙은 건 문화에 대한 인식과 비중이 높아진 21세기 이후의 일이다.

과거 정권이 불러온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의 후폭풍에 휩쓸려 있는 지금, 이 정권이 정말 문화계에 간섭은 안 하고 지원만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투명하고 민주적인 선발체계를 통해 대중의 동의가 확고한 전문가를 선출하는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문화정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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