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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영웅에 듣는다] 아이스댄스 1호 메달 양태화 심판… “男 파트너 구하기가 별따기였죠”

양태화 국제빙상연맹(ISU) 기술 심판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대표팀 3차 선발전이 열린 지난 5일 서울 양천구 목동실내빙상장에서 본보와의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양태화(오른쪽)-이천군 조가 1999 강원 동계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싱 부문에 출전해 연기를 펼치고 있다. 국민일보 DB


<4> 국내 첫 아이스댄스 선수 출신 양태화 심판

사상 첫 국제대회 메달도
2002년 솔트레이크 출전후 은퇴

“내가 불편해야 파트너가 편해
16년만에 출전 민유라·겜린
명맥 이어줘 너무 고마워”


“네가 아이스댄스 선수라고 했지. 혹시 얼음 위에서 하는 거니? 김동성(쇼트트랙)은 알겠는데 말이야….”

양태화(36) 국제빙상연맹(ISU) 기술 심판은 현역시절이던 1999년 강원 동계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부문에 파트너 이천군과 함께 출전해 동메달을 손에 쥐었다. 한국 피겨 사상 최초의 국제대회 메달이었다. 3년 뒤 한국 아이스댄스 선수로는 처음으로 동계올림픽(2002 솔트레이크시티) 무대도 밟았다. 한국 아이스댄스의 선구자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피겨는 여자 싱글의 ‘퀸’ 김연아가 등장하기 전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스타가 없었던 아이스댄스를 향한 관심은 더욱 낮았다.

양 심판도 열 살 때까지 여자 싱글 선수였다. 귀엽고 아담한 외모를 가진 어린 소녀의 눈매는 화장만 하면 무언가를 집어삼킬 듯 매서웠다. 지도자들은 그에게 아이스댄스 전향을 권했다. 연기력과 표현력이 중요한 아이스댄스에 장점이 있고, 성격도 유순해 파트너와 호흡을 잘 맞출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당시 국내에는 피겨 종목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아이스댄스는 남녀 선수가 짝을 이뤄야 하는데 남자 파트너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 대다수 선수 부모는 아이스댄스를 선호하지 않았다. 그러나 양 심판의 어머니는 달랐다. “한 번 시켜보죠”라며 딸을 아이스댄스에 입문시켰다.

지난 5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 대표팀 3차 선발전이 열린 서울 양천구 목동실내빙상장에서 양 심판을 만났다. 실수도 탈도 많았던 자신의 첫 올림픽이 큰 아쉬움으로 남은 듯 보였다. 양 심판은 “솔트레이크올림픽 때 제 다리를 파트너의 다리에 걸다 빼는 동작이 있었는데 스케이트 날이 하필이면 파트너의 바지에 걸렸다. 동작을 멈출 수 없어 파트너의 바지를 찢어 버리는 재치를 발휘했다”는 실수담으로 운을 뗐다. 이어 “사실 제가 올림픽에 나간 아이스댄스 1호 선수인지도 몰랐다. 스무 살이었는데 마냥 어렸고, 철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당시 파트너와 트러블이 많아서 힘들었고 성적을 내지 못해 아쉬웠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생애 첫 올림픽이 마지막 무대가 될 줄은 몰랐다. 솔트레이크대회 당시 양 심판의 어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양 심판은 평생의 꿈이었던 올림픽을 100% 즐기지 못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대회가 끝나고는 생각보다 이른 은퇴를 결정했다. 양 심판은 “그때는 지원이 너무 부족했다. 어머니가 쓰러진 뒤 경제적으로도 많이 어려웠다”며 “기존 파트너가 떠나면서 새 파트너를 구해야 했고, 파트너가 있어도 훈련비를 모두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털어놨다.

양 심판은 은퇴 후 여자 싱글 코치로 잠시 활동했다. 하지만 애착이 컸던 탓일까. 아이스댄스가 계속 눈에 아른거렸고, 국내 저변 확대에 앞장서기로 결심했다. 2007년부터는 국제심판이 되기 위한 공부를 했다. 그리고 국내 1호로 ISU 아이스댄스 테크니컬 스페셜리스트(기술 심판) 자격을 취득했다. 피겨 종목 중에서 아이스댄스는 기술이나 규칙이 복잡하고 어렵다고 평가된다. “한국 아이스댄스 선수가 많지 않아 너무 안타까웠다. 국제적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는 책임감에 밤을 새가며 공부했다. 지금도 100페이지가 넘는 핸드북에 줄을 쳐가며 공부한다.”

ISU 심판은 3년마다 시험을 통해 자격을 갱신해야 한다. 양 심판은 2016년 필기시험에서 단 한 문제만 틀려 1등을 했다. 이는 현재까지 필기시험 역대 최고점으로 남아 있다. 심판계에서 일종의 ‘세계 신기록’을 세운 셈이다. 양 심판은 ISU의 초청을 받아 활동하는 ‘ISU 레벨’이다. 국제심판으로는 최고 급수라 보면 된다. 양 심판은 “올림픽은 모든 선수들이 꿈꾸는 무대다. 심판인 제게도 그렇다. 최고가 되고 싶다”며 손가락 하나를 추켜세웠다.

한국 아이스댄스는 양 심판 이후 16년 만에 민유라-알렉산더 겜린 조가 올림픽에 나선다. 양 심판은 두 선수가 국내 아이스댄스의 명맥을 이어줘 고맙다고 했다. 그는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려 국민적 관심이 많아 두 선수가 들떠있을 것이다. 성적보다는 즐긴다는 생각으로 임했으면 좋겠다”며 “(평창올림픽에)출전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목표를 이뤘다. 이번 대회가 끝이 아니니 다음 올림픽도 바라보며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양 심판이 생각하는 아이스댄스는 어떤 스포츠인지 물어봤다. 그는 “두 선수가 같이 하기에 내가 불편해야 파트너가 편한 종목이다. 반대로 내가 편하면 파트너가 불편하다. 아마도 결혼 생활과 조금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며 수줍게 웃었다.

양 심판은 한국 아이스댄스가 발전하려면 선수 발굴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유라와 겜린이 대표 선발전에 단독 출전했다. 평창올림픽 이후에도 꾸준히 활동해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2022 베이징대회 때는 단독이 아닌 여러 조가 대표 선발전에 나서서 치열하게 경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평창올림픽이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이스댄스는 여전히 우리 국민들에게 낯설다. 관전 포인트를 묻자 양 심판은 쇼트와 프리댄스를 나눠 친절히 설명해줬다. 그는 “올 시즌 쇼트댄스의 필수 과제는 라틴음악을 소화하는 것이다. 각국 선수들이 동일한 라틴 리듬에 맞춰 연기를 펼치는데, 어떻게 다른 기술로 표현하는지 지켜보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또 “프리댄스는 선수들의 개성과 연기력이 묻어나는 경기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감상하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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