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박재찬] 소확행과 크리스천



가성비 좋은 물건 사기,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기, 친구로부터 안부전화 받기…. 지난 연말부터 카카오톡 같은 SNS 등에 돌고 있는 이른바 ‘소확행(小確幸)’ 목록 가운데 일부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의 소확행은 지난달 서울대 소비트렌드연구소가 펴낸 ‘트렌드코리아 2018’에서 꼽은 키워드 중 하나다.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상대적 박탈감이 더해지는 세태 속에서 소소한 기쁨이라도 맛보고 싶은 서민들의 욕구를 잘 포착한 것 같다.

소확행은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90년대 펴낸 수필집 ‘랑게르한스섬의 오후’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하루키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먹거나,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은 속옷이 쌓인 것,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등을 소확행의 사례로 꼽았다.그가 2015년 펴낸 에세이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서는 소확행에 관한 내공이 와닿는다. 소확행에도 어느 정도의 인내가 곁들여지면 만족감이 더해진다는 거다.

“생활 속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 잔 같은 것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

소확행 목록이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각자 정하기 나름이다. 블로그나 페이스북 같은 데엔 ‘나만의 소확행’이라며 올라온 글과 사진이 수두룩하다. 찬찬히 뜯어보니 저마다 꼽은 소확행은 개인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가 등장하고, 집과 학교와 직장 등에서 찾을 수 있는 일들이다. 먹고 일하고 노는 행위에서 누릴 수 있는 게 대부분이고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 속에서 누리는 소확행도 제법 눈에 띈다.

가령 친한 친구들과 여행가기, 가족·친구에게 작은 선물 건네기, 출출한 오후 직장 동료에게 간식 사주기 같은 것들이다. 혼자가 아닌, 옆에 누군가 있으면 좀 더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게 소확행의 묘미 같다.

일상과 공동체 속에서 찾아내는 소확행의 가치는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성경은 인간이 살아가는 일상을 곳곳에서 언급하는데 결코 소홀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자기가 하는 수고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것,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전 2:24) 살면서 원하는 걸 모두 얻었고, 인생의 모든 낙을 누렸던 솔로몬 왕이 내린 결론이다.

그가 ‘하나님의 선물’(전 3:13)이라고 말한 낙은 히브리어로 ‘토브’인데 행복을 뜻한다. 성경학자들은 이 구절이 쾌락주의나 물질주의를 뜻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자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매일 반복되는 의식주 생활과 공부든 업무든 자기가 맡은 일 자체가 행복이라는 얘기다. 그렇기에 소확행은 크리스천들이 더 많이 더 깊이 누릴 만한 가치가 있다. 나아가 교회는 가정과 학교, 직장 외에 소확행이 샘솟는 공간이라 할 만하다. 매주 수많은 만남과 모임, 나눔과 사귐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도 제목 요청하기, 고민거리 들어주기, 환자 성도 심방하기 같은 교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상은 성도들만이 누리는 소확행으로 꼽을 만하다.

영혼 구원과 섬김을 위한 공동체인 교회 특유의 소확행도 있다. 내 기도 대상이 또는 섬김의 대상이 회심을 하거나 심신이 회복되어 함께 예배를 드릴 때, ‘그래, 바로 이 맛이야’ 같은 특별한 행복감도 맛보곤 한다.

연초부터 “몇 억 벌었네” 하는 가상화폐 광풍에 “몇 억 뛰었네” 하는 강남 집값 얘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고 있다. 소확행에 위안 삼으려던 소시민들의 삶에 불쑥 끼어든 불청객 같다고 할까. 일상의 소중함을, 그 속에서 누리는 작은 행복의 기쁨을 놓치진 말았으면 한다. 교회가, 크리스천들이 소확행의 전도사가 되어주면 좋겠다.

박재찬 종교부 차장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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