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일상의 자유로운 투영

로베르 콩바, ‘화가와 모델’.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KEB하나은행


낡은 모자를 쓴 화가가 야외에서 그림 작업에 한창이다. 노랑 꽃, 빨강 꽃이 흐드러지게 핀 들판에는 누드의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모델 위로 황금빛 태양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오고, 꽃들은 햇살을 받아 즐겁게 노래한다. 화가가 한창 마무리 중인 그림에는 산과 꽃, 나무는 보이는데 모델은 보이지 않는다. 왼쪽 어디쯤 숨어 있는 걸까. ‘그림 속 그림’을 뜯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원색 물감을 거침없이 쓰며 들판에서 작업하는 화가를 자유분방하게 그린 이는 프랑스의 로베르 콩바(61)다.

1980년대 프랑스 미술계를 풍미했던 자유구상주의의 리더였던 콩바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신의 본능을 화면에 격렬하게 드러낸다. 형상을 둘러싼 검은 테두리가 특징인 그의 그림은 흥분과 활력이 넘치고, 원근법쯤은 가뿐히 뛰어넘는다. 화가와 모델을 그린 이 그림 또한 화가의 시선이며 붓을 쥔 팔의 표현은 엄정한 아카데미즘의 잣대로 보면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콩바는 말한다. “내 그림에서 나는 완벽하게 자유롭고 싶다. 우리 일상에 내재한 어리석음과 욕망, 아름다움과 추함, 미움과 배려, 진지함과 재미를 마음껏 말하고 싶다”고.

콩바의 말을 아로새기며 그림을 다시 보면 그림이 새롭게 보인다. 푸른 하늘에는 하얀 꽃들이 뭉게구름처럼 떠있고, 초록의 산에는 비정형의 선들이 지그재그로 꿈틀댄다. 만화적 기법에 스테인드글라스적 요소를 뒤섞고, 구상과 초현실을 넘나들며 ‘근엄하고 고상한’ 미니멀리즘에 일격을 가한 콩바는 미국의 낙서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에 비견되곤 한다. 그의 강렬한 회화와 조각은 서울 KEB하나은행 새 사옥 로비에서 만날 수 있다.

이영란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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