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연정이 마지막 고비를 만났다. 앙겔라 메르켈(63) 총리의 집권 기독민주(CDU)·기독사회(CSU) 연합과 제1야당 사회민주당(SPD)이 예비협상까지 마쳤지만 최종 비준을 앞둔 사민당 내 분위기가 우호적이지 않다. 현지 언론은 대연정이 끝내 무산될 가능성도 제기한다. 최악의 경우 독일을 중심으로 한 현 유럽연합(EU) 체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에 따르면 사민당은 21일(현지시간) 본에서 열리는 긴급 전당대회에서 기민·기사연합이 주도하는 대연정에 참여할지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마르틴 슐츠(62) 사민당 대표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각 지역을 돌며 동의를 구하고 있다.
현재 사민당 내 분위기는 대연정 성사를 확신하기가 어렵다. 일반 당원들 사이에선 대연정 찬성 여론이 근소하게 앞서지만 일반적으로 전당대회에 참석하는 대의원단의 성향이 일반 당원보다 강경한 것을 고려하면 결과를 쉽사리 전망할 수 없다. 이미 작센안할트와 튀링겐주, 베를린 대의원단은 예비합의안 반대 입장을 공식화했다.
여론의 신뢰를 잃은 슐츠 대표의 설득이 힘을 발휘할지도 의문이다. 16일 일간 빌트차이퉁에 따르면 사민당 지지율이 2차대전 이후 최저 수준인 18%까지 하락했다. 당내에선 벌써부터 이번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 청년조직 유조(JUSOS·청년 사회주의자)의 지도자 케빈 퀴흐나르트(28)를 비롯한 새로운 리더십이 부각되고 있다.
메르켈 총리 역시 17일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사민당을 향해 “독일은 안정적인 정부가 필요하다”면서 “(대연정 관련) 책임 있는 결정을 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메르켈 총리는 앞서 녹색당·자유민주당(FDP)과의 대연정 협상이 결렬된 직후 “재선거를 하는 게 나을 수 있다”며 배수진을 친 바 있다. 하지만 비슷한 경험이 많지 않은 독일 정계의 특성상 대연정이 결렬되면 기민·기사 연합이 소수 정부를 구성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대연정이 실패할 경우 여파는 유럽 전체에 미친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EU 체제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은 “지금 상황만으로도 메르켈의 지도력은 큰 타격을 입었다”면서 “여태까지처럼 독일이 EU 통합 드라이브를 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장 위원은 “대연정이 타결되더라도 기민당 내에서 EU 재정통합 가속화 등 주요 의제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 사민당이 바라는 대로 EU 통합 의제를 밀어붙이긴 힘들다”고 덧붙였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