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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정미경의 단아한 삶 닮은 유작





당신의 아주 먼 섬/정미경 지음, 문학동네, 224쪽, 1만2000원

새벽까지 희미하게/정미경 지음, 창비, 240쪽, 1만3000원


사람은 떠나도 이야기는 남는다.

소설가 정미경(1960∼2017·사진) 1주기를 맞아 유작 2권이 나왔다. 장편소설 ‘당신의 아주 먼 섬’(문학동네)은 남편 김병종(65) 화백이 작가의 집필실에서 발견한 미완의 작품이다. 김 화백이 이곳을 정리하러 갔다가 책더미 속 한 상자에서 원고 뭉치를 찾았다고 한다. 그는 발문에서 “내게서 그녀를 데려가버린 도화선이 되었던 미운 소설”이라고 했다.

고인이 이 소설을 쓰던 중 발병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김 화백은 원고를 출판사에 넘길지 고민하다 “세상에 완성이 어디 있으랴. 인생 자체가 미완이다. 그녀의 삶 또한 미완인 채로 끝나버리지 않았던가. …미완은 미완인 채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출간을 결정했다. 이 작품이 독자의 손에 오기까지에도 이야기가 있는 셈이다.

‘당신의 아주 먼 섬’은 남도 어느 작은 섬에 얽힌 사람들 이야기다. 바다 하늘 모래언덕 노을 등과 같은 자연 풍경이 자주 나온다. 그 속에서 저마다 이야기를 간직한 인물들이 자신의 슬픔을 조용히 응시한다. 소설 속 한 문장. “어떤 하루는, 떠올리면 언제라도 눈물이 날 것이라는 걸 미리 알게 한다.”

소설집 ‘새벽까지 희미하게’(창비)는 2016년 여름 발표한 단편소설 ‘새벽까지 희미하게’를 비롯해 근작 소설 5편을 묶은 것이다. 여기에 소설가 정지아 정이현 유족인 김 화백이 쓴 추모 산문 3편이 더해졌다. 표제작은 작은 사무실 말단 직원 송이와 대표 유석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다.

송이는 간혹 뜬금없는 소리로 답답한 사무실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유석은 ‘새벽까지 희미하게’ 뜬 달 아래 송이와 대화를 나누며 위로를 받는다. 유석은 송이의 아이디어를 슬쩍 가로채고 송이의 구질구질한 삶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놀이터 모과나무 둥치를 껴안고 ‘충전’할 줄 알던 송이는 자기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다.

수록 작품들에서 “삶의 세부를 치밀하고 견고하게 새겨 넣는” 작가의 단단한 솜씨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김 화백은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라는 제목의 추모 글에서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삶을 껴안고 보듬으며 아름답고 단아하고 우아하고 품위 있게 끌어나가는 힘이 그녀에게는 있었다”고 썼다. 고인이 남긴 소설들은 그의 삶을 닮았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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