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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선수] 입양 온 동생 모국서 ‘우애의 썰매’ 탄다

미국 여자 봅슬레이 대표 제이미 그루벨 포서(오른쪽)가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주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진행된 공개 훈련에서 동료 로렌 깁스와 썰매를 밀고 있다. AP뉴시스
 
한국에서 입양된 여동생 엘리자베스와 함께 활짝 웃는 모습. 제이미 그루벨 포서 인스타그램


평창올림픽 결정된 후 훈련 매진
그저 그런 선수에서 대표로 우뚝
첫 출전 올림픽인 소치서 값진 銅

동생, 생후 5개월 때 미국 입양
내달 18년 만에 첫 방문할 예정
“경기 날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발표된 2011년 7월 6일. 미국 뉴욕주 레이크플래시드에 위치한 올림픽트레이닝센터(OTC)에서 TV방송을 보면서 한국의 평창이 선정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여자 봅슬레이 선수가 있었다.

당장 2014년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출전할 자격도 얻지 못했고 심지어 봅슬레이 조종수 역할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변변한 수상 경력도 없는 그저 그런 선수였다. 하지만 평창이 올림픽 개최지로 발표된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 반드시 내가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기 위해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미국 국가대표팀 공식 홈페이지에 17일 게시된 인터뷰를 보면 제이미 그루벨 포서(35)는 그때부터 온 힘을 다해 훈련에 몰입했고 기량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당초 기대주로 꼽히지도 않았던 그가 소치올림픽 미국 대표로 선발됐고, 올림픽 처녀 출전에서 동메달까지 목에 거는 이변을 일으켰다.

그루벨 포서가 그토록 간절하게 평창행을 원했던 이유는 그의 여동생 엘리자베스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는 생후 5개월 때인 2000년에 그루벨의 집안으로 입양됐다. 17세였던 그루벨 포서는 당시를 생생히 기억한다. 오랜 기간 입양 심사를 거친 뒤 한 장의 사진이 가족에 주어졌다. 한국 인천에서 태어난 아기였다. 새 가족이 생긴다는 생각에 그루벨 포서는 뛸 듯이 기뻤다.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으로 마중 나간 그루벨 포서 가족은 나이 지긋한 한국인 부부가 건넨 갓난아기와 가방 몇 개를 받았다. 이들이 아기의 친부모는 아니었다. 입양기관으로부터 좌석 하나의 비용을 받는 대신 아기 전달을 맡은 관광객이었다.

입양 이후 현재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엘리자베스는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해 본적이 없다. 그루벨 포서는 엘리자베스가 모국을 다시 방문할 수 있기를 늘 꿈꿨다. 때마침 한국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게 됐으니 자신이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고, 엘리자베스를 초청해야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그루벨 포서는 지난해 3월 평창에서 진행된 테스트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방한한 적이 있다. 2주간 한국에 머물렀던 시간은 그에게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단지 금메달을 땄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시로 곳곳의 사진을 찍어 미국 펜실베니아에 거주하고 있는 엘리자베스에게 보내주고는 했다. 그루벨 포서는 “한국인과 마주칠 때마다 엘리자베스를 떠올렸고, 그들이 엘리자베스와 관련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매우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다음 달 엘리자베스는 18년 만에 모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다른 가족들도 그루벨 포서를 응원하기 위해 첫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게다가 엘리자베스 등 형제들이 그루벨 포서의 경기를 실제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루벨 포서는 “엘리자베스를 비롯해 가족들과 올림픽 기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정말 흥분되는 일”이라며 “경기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루벨 포서는 독일 봅슬레이 대표 크리스티안 포서와 2014년 결혼하면서 전 세계 스포츠팬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평창올림픽에서 부부가 맞대결을 펼치는 것은 아니지만, 각자 고국의 명예를 걸고 선의의 메달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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