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자코메티의 예술세계] 대상이 뿜어내는 ‘인상’을 포착하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1920년대 후반에 완성한 작품 ‘여인: 평면 Ⅴ’. 자코메티는 이 작품을 만들 때 대상의 ‘인상’을 재현하는 데 몰두했다. 필자 제공
 
고대에 키클라데스 군도에서 만들어진 ‘작은 바이올린형’으로 불리는 조각. 필자 제공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관계 맺기

나는 이른 아침이면 공부방 방석에 좌정(坐定)한 뒤 마당 한가운데 서 있는 능수벚나무 한 그루를 가만히 바라본다. 지난 5년 동안 바라보았다. 이 나무의 모습은 사시사철 조금씩 변한다. 신기한 건 자세히 보면 볼수록, 무엇이 원래 모습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나는 이 능수벚나무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왜 관찰의 대상은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지는가? 나는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 시력으로, 내가 볼 수 있는 능력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볼 수 있는 한계 안에서만 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능력이나 한계를 ‘무식(無識)’이라고 부른다.

내가 만일 망원경 혹은 현미경을 동원해 본다면, 대상의 모습은 내가 육안으로 보는 것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할 것이다. 만일 내가 안경을 벗는다면, 나는 그 나무에 대해 볼 수 있는 게 거의 없을 것이다. 능수벚나무가 그 장소에 있다는 사실은 빛이 있기 때문에 확인가능하다. 만일 컴컴한 밤이라면, 나는 그 벚나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나는 벚나무의 무엇을 보는가? 인간이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 중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는 ‘보기’와 관련이 있다. 인류의 먼 조상은 네 발로 걷다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한 가지 능력을 집중적으로 배양했다. 단순하게 ‘보기’를 넘어 자신이 보고자 하는 대상을 깊이 보는 ‘관찰’의 능력이다.

유인원 중 인간만이 눈이 머리 앞에 달렸다. 대부분의 동물은 눈이 머리 옆에 달려 있다. 다른 동물들의 공격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지금도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지대에서 사냥하는 원주민의 가장 중요한 기술은 ‘관찰’이다. 사냥꾼은 오랜 관찰을 통해 자신과 사냥감을 합일(合一)시킨다. 자신이 마치 그 사냥감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사냥에 임한다.

인간의 뇌에는 ‘거울신경세포’가 있다. 이 세포 덕분에 자신이 관찰하고 있는 동물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 내가 묘사하려는 3차원의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기란 불가능하다. 인간은 19세기 말이 돼서야 이 사실을 깨달았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자신이 조각하려는 모델을 보면 볼수록, 그 대상과 자신 사이에 커다란 막이 생겨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이 조각하려는 작품을 먼저 머릿속에서 완성한 뒤,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재현하려고 시도했다. 조각품은 대상에 대한 재현이나 흉내가 아니라, 그 대상을 자신의 머리로 인식한 기억의 잔상에 대한 표현이다. ‘본다’는 행위는 나와 그 대상과의 지속적인 관계 맺기다.

천국

3인칭의 대상은 지속적인 관계 맺기를 통해 2인칭이 되었다가 어느 순간 나와 합일돼 결국엔 내 자신, 즉 1인칭이 된다. 관계 맺기는 예수님이 말한 ‘천국(天國)’의 정의와 같다.

누가복음 17장 20∼21절에는 천국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바리새인들은 천국을 자신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장소라고 여겼다. 자신들이 확인할 수 있는 시간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라고 묻는다. 그러자 예수님은 단호하게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 한다”라고 답한다. 천국은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을 초월하는 어떤 것인 셈이다. 예수는 천국이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넌지시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라는 번역은 예수의 원래 의도를 전달하기에 부족하다. 이 문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대한민국’처럼 실재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추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뜻’이란 신과 인간과의 온전한 관계, 인간과 인간의 이상적인 관계, 인간과 자연의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그 관계를 “너희 안에 있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인상

자코메티는 자신이 운명적으로, 예술적으로 만난 대상과의 ‘관계’를 조각했다. 그와 모델 간의 관계를 정리한 개념이 있다. 바로 고대 이집트인들이 인간 영혼의 다섯 가지 구성 요소 중 하나라고 규정한 ‘바(ba)’다. 그들은 인간 영혼이 ‘입(ib)’ ‘슈트(sheut)’ ‘렌(ren)’ ‘카(ka)’ ‘바(ba)’로 구성됐다고 믿었다.

여기서 ‘입’은 축자적으로는 ‘심장’을 의미하지만 실제로는 ‘생각’이다. 둘째 ‘슈트’는 ‘그림자’란 의미로 그들은 움직이는 그림자도 그 사람의 영혼의 일부라고 여겼다. 셋째 ‘렌’은 그 사람만이 지닌 ‘이름’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어떤 사람을 저주할 때, 그 사람의 이름이 새겨진 돌을 훼손했다. 넷째 ‘카’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구분하는 요소로 사람을 살아있게 만드는 ‘생명력’이다. 다섯째 ‘바’는 영혼의 핵심부분이다.

‘바’는 어떤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드는 것으로 ‘개성’ 혹은 ‘인상’으로 번역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수십 년 전에 다닌 초등학교 동창생 하나를 떠올려 보면, 그의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나진 않으나, 그에 대한 ‘인상’은 남아있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인상을 ‘바’라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을 자신답게 만드는 것이 ‘바’라고 믿었다.

자코메티는 조각 작품을 만들 때, 그 대상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존재에서 나오는 아우라, 혹은 그 아우라와 관계맺음을 ‘인상’이라고 생각했다. 예술은 대상의 겉모습과 그 대상이 뿜어내는 인상에 대한 포착이다. 그는 인상을 조각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쓴 ‘파이돈’에는 소크라테스가 ‘진리’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나온다. 진리는 본질적으로 주체와 객체가 인격적으로 조우하는 순간에 등장하는 ‘관계’다. 글쓰기는 진리를 재현할 수 없다. 영혼이 추구하는 진리에 대한 모습을 지향할 뿐이다.

자코메티는 어떤 대상을 보고 이해하는 순간, 그것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슬퍼했다. 그는 말한다. “상징들, 특히 과거로부터의 상징들은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그들은 폭발하고 사라진다. 사람들은 예술작품을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상상한 ‘바’를 포착해 작품으로 남겼던 것 같다. 그의 조각품은 대상을 묘사한 물건이 아니다. 대상의 존재가 뿜어내는 인상에 대한 탐구이자 질문이다. 그 순간에 대한 반응이다.

키클라데스 조각

존재의 인상을 담으려는 자코메티의 시도는 1927년 봄부터 시작됐다. 그는 프랑스 파리 몽파르니스 근처 이폴리트맹드롱가(街)에 작업실을 차렸다. 그는 가끔 자신의 고향 스위스를 방문할 때를 빼면 66년 죽을 때까지 이 작업실에서 거주했다.

작업실은 창조적인 작업을 위한 자코메티의 아지트였다. 예술적으로 승화되는 나비가 되기를 연습하는 고치였다. 그는 1차 세계대전 후에 전 세계에서 다양한 예술들을 실험하고 창조하는 예술가들과 함께 자신의 미래를 본격적으로 조각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아시아 북유럽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된 다양한 고대예술 작품에 영감을 받으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예술세계를 구축해나갔다.

특히 키클라데스 조각에 매료됐다. 키클라데스 예술은 기원전 3200년부터 기원전 2000년까지 그리스 에게해 키클라데스 군도에서 등장한 예술이다. 이 예술은 후대 등장한 크레타 문명의 근간이 되었다. 그는 ‘작은 바이올린형’이라 불리는 30㎝ 정도의 조각상을 발견했고, 이 작품을 응시했다. 이 조각은 아마도 고대 근동의 영향을 받은 풍요와 재생의 여신을 상징할 것이다. 그 시기의 사람들은 이 조각을 무덤에 부장품으로 함께 넣었을 것이고, 이를 통해 부활을 꿈꾸었을 것이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이 조각상은 양팔을 가슴 앞에 낀 채, 다리를 앞으로 약간 굽힌 모습으로 서 있다. 얼굴은 코만 중앙에 나와 있고 눈은 표시돼 있지 않다. 눈을 조각하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보는 이를 꿰뚫어보는 느낌을 준다.

키클라데스 조각의 단순성과 평면성은 매력적이다. 이 조각들은 자코메티의 1920년대 후반 조각들, 특히 ‘여인: 평면 Ⅴ’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조각품은 자코메티가 자신의 관찰에 충실한 이미지를 재현하는 데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했다. 그는 말했다. “제가 재현하려는 저 여인을 위한 조각은, 제가 그녀를 길거리에서 먼 거리에서 처음 본, 그 정확한 순간의 시선이 결정합니다.”

그가 이 작품에서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혹은 그는 이 작품에서 무엇을 걷어냈고 무엇에 몰입했을까? 그에게 여인이란 무엇인가?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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