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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선수] 쇼맨십에 金 놓쳤던 ‘스노보드 여신’… 평창서 3전4기 도전

미국 여자 스노보드 크로스 대표 린지 자코벨리스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대회에서 점프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홈페이지
 
자코벨리스가 소치 대회 참가 당시 입양한 유기견을 안고 2016년 기념촬영하는 모습. 린지 자코벨리스 페이스북


2005년부터 세계선수권대회
5차례 우승한 최정상급 선수

올림픽 세 번 출전 고작 銀 1개
2006 토리노올림픽 결승전선
골인 앞두고 쇼 부리다 넘어져

소치에선 길거리 유기견 보호
대회 후엔 집으로 데려가 키워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여자 스노보드 크로스 결승. 결승선을 불과 100m 앞두고 1위로 달리는 미국 대표의 앞에 다른 선수는 보이지 않는다. 2위로 쫓아오는 선수는 10m 이상 뒤로 처져 있다. 스노보드 크로스는 여러 명의 선수가 장애물이 설치된 코스를 달려 통과 순위를 가리는 경기다. 올림픽 금메달이 확실시되는 상황. 그때 미국 대표는 마지막 점프대에서 돌연 허리를 틀어 보드를 손으로 잡는 기술을 선보인다. 관중들의 짧은 환호가 채 끝나기도 전 눈밭 위로 착지한 선수는 중심을 잃고 뒤로 구른다. 재빨리 일어나 몸을 움직여 보지만 속도는 좀처럼 나지 않고, 뒤쪽에 있던 선수는 이미 추월해 양팔을 번쩍 들면서 결승선을 통과한다.

20대 초반에 혈기왕성했던 린지 자코벨리스(33)는 그렇게 올림픽 역사에서 잊히지 않을 장면의 주인공이 됐다. 쇼맨십이 지나쳤던 자코벨리스는 넘어져 토리노 대회 은메달에 그쳤고, 덕분에 스위스의 타냐 프라이덴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자코벨리스는 불필요한 기술을 써 금메달을 놓쳤다는 지적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때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나의 열정을 관중들과 나누고 싶었다”며 “은메달을 땄기 때문에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을) 마음 쓰지 않는다”고 말해 낙천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토리노 대회를 시작으로 자코벨리스가 ‘무관의 여신’이 될 줄 그 자신을 포함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자코벨리스는 국제스키연맹(FIS) 스노보드 크로스 세계선수권에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우승만 다섯 차례 했던 최정상급 선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6일 홈페이지에 자코벨리스를 소개한 글에서 “스노보드 크로스 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라고 했다.

그러나 자코벨리스는 올림픽에서는 유독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토리노 대회로부터 4년 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명예 회복에 나섰지만 준결승에서 첫 점프를 한 뒤 균형을 잃고 코스를 이탈해 실격됐다. 세 번째 올림픽 도전 무대였던 2014년 소치대회에서도 그는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마지막 올림픽이 될지도 모르는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자코벨리스의 각오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자코벨리스는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훈련하는 동영상을 올리고 “멈출 수 없고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자코벨리스는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도 세계 스포츠팬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4년 전 올림픽이 열린 소치에서 길거리를 배회하는 유기견을 발견한 그는 대회 기간 내내 개를 보호하며 애정을 쏟았다. 대회가 끝난 뒤에는 개와 함께 미국으로 귀국했다.

소치시는 수많은 유기견을 처리하기 위해 살처분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이에 올림픽에 참가한 각국의 선수들이 직접 버림받은 개 입양에 나섰고 자코벨리스도 동참한 것이다. 당시 자코벨리스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훨씬 값진 보물을 발견했다”며 기뻐해 감동을 선사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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