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2018 평창

서울올림픽 자원봉사 탈락 30년만에… 딸과 함께 ‘평창 봉사’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인 서희정(왼쪽)-이지수 모녀가 지난 3일 부산 부산진구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내 2018 평창 공식스토어에서 주먹을 쥔 채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1988 서울올림픽 자원봉사에 지원했다 탈락한 경험이 있는 서씨는 “3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딸과 함께 자원봉사를 하게 돼 꿈만 같다”고 기뻐했다. 부산=최현규 기자


자원봉사자 활동 손꼽는 서희정·이지수 모녀

서씨 숙박 부문서 봉사활동
“생애 마지막 기회될 것 같아
지원했는데 합격… 너무 신기”

딸 지수씨, 엄마 열정에 감동해
성화봉송주자로도 뛰어
긍정적인 사고가 행운 가져와
현장교육 뒤 선수촌서 근무
내달 6일부터 시간계측 도우미


19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여러 신문에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공고가 실렸다. 어린 시절부터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서희정(49)씨는 이 공고를 본 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한다. 곧바로 지원서를 냈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그로부터 30년 뒤 한국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서씨는 다시 한 번 자원봉사자 모집공고와 마주했다. 그는 “중년의 가정주부인 내가 설마 합격하겠어?”라고 생각하면서도 망설임 없이 자원봉사자 ‘재수생’이 되기로 결심했다.

마침내 꿈만 같던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재도전 끝에 평창올림픽 숙박부문 자원봉사자로 합격한 것이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었다. 함께 지원한 딸 이지수(20)씨도 동반 합격했다. 자신이 30년 전 놓쳤던 기회를 당시 나이의 딸이 쟁취한 것에 기쁨이 두 배가 됐다.

지난 3일 부산 부산진구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내 2018 평창 공식스토어에서 만난 이들 모녀 자원봉사자의 얼굴에는 설렘과 기대감이 가득했다.

서씨는 서울올림픽 자원봉사자에서 탈락한 뒤 아쉬움이 컸다고 한다. 당시 탈락자들에게 기념품으로 나눠준 마스코트 ‘호돌이 액자’를 받고선 더욱 울컥했다. 서씨는 “제 생애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아 평창 자원봉사자로 딸과 함께 지원했는데 같이 합격해서 너무 신기하다. 면접을 볼 때 나이 얘기도 나와서 걱정했는데 결과가 좋았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딸 역시 “엄마의 열정을 보고 크게 감동했다. 지우고 쓰는 것을 반복하며 지원서를 빼곡히 작성하던 엄마에게서 평소에 보지 못한 진지함을 봤다”며 “저도 엄마와 함께 국제적인 행사에 일원으로 참가하게 돼 너무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마을 도서관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엄마를 보고 자랐다. 자연스럽게 남을 돕는 일에 관심이 생겼고 몸도 이를 따라갔다. 이씨는 평소에는 동네 어르신들을 상대로 ‘말벗 도우미’ 봉사활동을 한다.

평창 자원봉사자에 합격한 뒤 두 모녀에게는 많은 변화도 생겼다. 서씨는 지난해 7월 딸과 함께 자원봉사자 필수교육을 이수했다. 교육 중에 질문을 받으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답하려고 노력했다. 교육이 끝나면 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배운 내용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복습을 했다. 평창올림픽 관련 기사를 읽는 것도 그의 일상이 됐다. 평범한 주부로서 가족과 집밖에 몰랐던 서씨는 나라에 미력하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삶에 대한 의욕이 생겨났다. “그동안 가정주부로 살면서 내가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을 계기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평창올림픽은 이씨의 삶에게도 작은 전환점이 됐다. 이씨는 지난해 대학에 진학했지만 뚜렷한 진로를 정하지 못해 고민이 컸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학교와 집을 오가는 것 같아 우울하고 서글펐다. 하지만 자원봉사자 합격을 계기로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치열한 삶을 살기로 마음먹자 자신감이 붙었다. 성화 봉송주자에 도전했고 또다시 뽑혔다. 긍정적 사고가 행운마저 계속 갖고 오는구나 싶었다. 이씨는 지난해 11월 4일 부산 사하구 대티역 부근에서 가족들의 응원 속에 성화 봉송주자로 나서 200m 구간을 직접 뛰었다. 평창올림픽의 일원이 됐다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자부심도 생겼다.

두 모녀는 조만간 자원봉사자로 정식 투입된다. 서씨는 오는 26일부터 현장교육을 받은 뒤 올림픽선수촌 내 숙소에서 한 달가량 근무한다. 선수나 관광객 등 숙소 이용객들의 민원 접수 업무를 맡는다. 가정주부로 살아온 서씨는 한편으로 걱정이 앞선다고도 했다. 그는 “올림픽 기간에 가사를 놓는데 남편이 홀로 집에서 둘째, 셋째 아이를 잘 챙길지 걱정된다. 평창은 날씨가 엄청 춥다고 하는데 저와 떨어져 일하는 딸이 몸 건강히 자원봉사를 마쳤으면 한다”고 했다.

이씨는 다음 달 6일부터 정보기술 분야에서 시간계측 도우미로 활동한다. 각 종목별 선수들의 기록을 측정하는 올림픽 관계자들을 돕는다. 이씨는 “용기를 내준 엄마에게 너무 고맙다. 올림픽 기간에는 떨어져서 근무하지만 함께 잊지 못할 좋은 추억들을 만들어서 돌아오면 좋겠다”며 “열심히 자원봉사 활동을 한다면 분명 평창올림픽도 성황리에 막을 내릴 것 같다”고 기대했다.

부산=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