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김나래] 완벽한 날들, 작은 습관 하나



여행을 가면 그 동네 서점에 들러 책을 몇 권씩 사 온다. 여행지에서 고른 책은 바쁜 일상 속에서 ‘필요’에 따라 사들이는 책과는 거리가 있다. 평소 안 읽던 장르의 책을 과감히 선택하거나, 책방 주인의 취향을 전적으로 수용할 때도 많다. 고정된 취향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책 고르기 패턴에 작은 균열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소소한 일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들은 여행지에서 읽히지 않으면, 집에 와선 이내 방치되는 운명에 처한다. 지난해 강원도 속초의 작은 서점 ‘완벽한 날들’에서 데려온 책들도 그랬다. 그나마 이 책은 운이 좋았다. 책장에서 다른 책을 찾던 중 우연히 눈에 띄었으니 말이다. 미국의 생태 시인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로, 서점과 동명이라 덥석 집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책을 꺼내 읽었다.

시인은 자연과 교감하며 세상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습관, 다름, 그리고 머무는 빛’이란 글에서 시인은 ‘중요한 일보다는 사소한 일에 습관적으로 행동할 때가 많은’ 인간과 달리 숲속의 새나 산언덕 위의 여우는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습관과 싸움을 벌이며 살아가는 존재다. 시인은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드리는 기도 시간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기도 시간에 그들은 안달복달하는 삶을 초월한다. 다름과 기발함은 달콤하지만, 규칙성과 반복 또한 우리의 스승이다. 신에게 집중하는 일은 무심히 행할 수도 없고 베니스나 스위스를 여행하듯 한 철에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설령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도 거기에 얼마나 집중할 수 있겠는가? 화려할 수도, 소박할 수도 있지만 정확하고 엄격하고 친숙한 의례가, 습관이 없다면 신앙의 실재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겠는가?”

마치 시인이 나더러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았다. 급하면 새벽기도도 가고, 집중해서 성경을 읽기도 했지만 너만의 ‘정확하고 엄격하고 친숙한 신앙 습관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달리 할 말이 없다.

직업 탓인지 몰라도 어떤 일을 규칙적으로 하기보다 임박한 시점에 후다닥 해치우는 때가 많았다. 삶의 방식이 그렇다 보니 신앙생활 역시 꾸준하기보다 들쑥날쑥 제멋대로였다. 무언가를 규칙적으로 하기보다 일상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극적인 사건을 통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길 꿈꾸곤 했다.

하지만 시인의 이야기처럼 신앙생활의 본질은 하나님과 잠시 달콤한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아니다. ‘다름과 기발함’의 달콤함보다 규칙적으로 반복하며 쌓인 것들의 위력이 절대 작지 않음을 점점 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말씀 읽기와 묵상, 기도와 봉사 활동 등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겠냐마는 올해 나는 이런 소박한 습관 하나를 다짐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나를 위한 기도뿐 아니라 이웃을 위한 기도를 빼먹지 않고 하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함께 기도하는 것의 즐거움을 알려주셨고, 그리스도인들이 중보기도를 통해 세상을 섬길 수 있음도 가르쳐주셨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성도의 공동생활’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동생활에서 심장의 고동 소리가 들리는 곳에 이르렀다”는 멋진 표현을 쓰면서 중보기도를 설명한다. “가장 우선으로 중보기도를 해야 하는 대상은 날마다 그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지체들 상호 간의 중보기도를 힘입어 살아가며, 그렇게 하지 않을 때 그 공동체는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중보기도는 개인과 공동체가 날마다 들어가야만 하는 정화의 욕실입니다.”

지난해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살았지만, 진짜 그리스도인의 삶의 개혁은 아직 이루지 못했다. 어쩌면 그 일은 기도라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 습관을 점검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복을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이 땅에서 억압 받고 고통 받는 이들을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으로 돌봐달라는 기도. 그런 기도하는 습관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늘어나기를 기도한다.

김나래 종교부 차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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