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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 야사] 美피겨 ‘희대의 라이벌 폭행’… 캐리건 피습 사주 의혹

토냐 하딩과 크리스티 야마구치, 낸시 캐리건(왼쪽부터)이 1991년 3월 12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 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각각 은메달, 금메달, 동메달을 따낸 뒤 시상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94년 하딩은 실력과 미모 등에서 앞서 광고 스폰서를 독식하던 라이벌 캐리건을 질투해 테러를 공모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AP뉴시스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미국 피겨스케이팅 대표 선발전이 열리기 이틀 전인 94년 1월 6일. 한 괴한이 디트로이트의 피겨 훈련장에서 낸시 캐리건(49)의 무릎을 둔기로 내려쳤다.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동메달, 세계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1992) 은메달을 따낸 캐리건은 릴레함메르 대회에서도 유력한 메달 후보여서 피습의 파장은 미국 전체를 강타했다. 이례적으로 미 연방수사국(FBI)이 이 사건에 개입했다. 그런데 8일 후 용의자 3명이 밝혀진 뒤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용의자 중 한 명인 숀 에카르트가 바로 캐리건의 강력한 라이벌인 토냐 하딩(48)의 경호원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후엔 하딩의 남편 제프 질룰리도 기소됐다.

테러를 당한 캐리건은 선발전 출전을 포기했고 하딩이 1위를, 미셸 콴(38)이 2위를 차지해 올림픽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하딩은 테러의 배후로 지목됐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미국 피겨팬들은 하딩이 잘나가는 캐리건에 대한 질투로 이 같은 일을 사주했다고 보고 하딩을 맹비난했다. 결국 미국빙상연맹은 다시 캐리건에게 올림픽 티켓을 줬고 콴은 눈물을 삼키며 출전을 포기해야 했다. 캐리건은 릴레함메르올림픽 여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따냈지만 하딩은 8위에 그쳤다.

하딩은 올림픽이 끝난 뒤 테러 사주 혐의를 인정하는 대신 구금을 피하고 집행유예를 받았다. 미국빙상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이라는 중징계도 받았다. 이 사건은 영화 ‘아이, 토냐(I, Tonya)’로 만들어져 오는 3월 국내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하딩이 딸을 앞세워 신분 상승을 노렸던 어머니와 탐욕스러운 남편 등 주변 사람들에게 이용된 희생양이라는 주장도 있다. 1998년 한 미국 방송은 하딩과 캐리건을 한자리에서 만나게 했다. 앵커는 하딩에게 “남편과 경호원 등이 그런 일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사전에 알거나 짐작하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했다. 또 하딩은 2008년 자서전에서 ‘캐리건 사건’은 전 남편 질룰리와 경호원 에카르트가 계획했으며, 자신은 그들에게 협박을 당해 FBI에 신고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딩은 피겨스케이팅 선수 자격이 박탈된 이후 프로 복서, 종합격투기 선수에 도전하다 은퇴 후 재혼해 평범하게 살고 있다. 사건 피해자인 캐리건은 아이스쇼 연출, 피겨대회 해설자, 저술 활동 등에 매진하면서 아직도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2004년에는 미국 피겨스케이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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