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우리다운 미술을 찾아서

김환기 ‘항아리와 여인들’ 1951,캔버스에 유채, 54×120㎝(부분). 환기미술관


우유 빛 백자 항아리를 품에 안거나 머리에 인 여인들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다. 반라(半裸)의 여성들은 저마다 다른 자세로 포즈를 취했다. 시선도 제각각, 표정도 제각각이지만 모두 건강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오른쪽 여성의 머리 위 물고기는 펄펄 살아 곧 튕겨져 나올 듯하다. 싱그러운 생명력으로 가득 찬 인물화를 그린 이는 수화 김환기(1913∼74) 화백이다.

김환기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부산 피난지에서 이 작품을 완성했다. 그는 인물의 높낮이와 시선을 다르게 함으로써 화폭에 리듬감과 압축미를 살렸다. 때문에 평면회화지만 입체적 공간감이 느껴진다. 암울했던 피난시절 이 같은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이상향’을 향한 작가의 간절한 소망도 살필 수 있다.

혹자들은 수화의 이 작품이 19세기 말 고갱의 타히티 회화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푸른 바다와 붉은 인물의 강렬한 대비 때문이다. 또 항아리를 어깨에 얹은 여성상은 그리스 조각 이후 서양미술에 자주 등장했던 모티브다. 그러나 김환기의 그림은 조선의 백자를 그 무엇보다 사랑했던 화가가 여인과 백자, 한국의 자연을 하나로 아우르면서 일체화시켰다는 점에서 독자성을 지닌다.

일본서 미술대학을 다니며 서양의 아카데미즘을 학습하긴 했지만 수화는 ‘우리다운 미술’을 구현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작가다.

말년을 뉴욕서 외롭게 작업했던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전남 신안의 짙푸른 바다와 밤하늘의 별, 보름달처럼 넉넉한 백자를 한시도 잊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이렇듯 한국의 고유한 정서와 미의식을 화폭에 다채롭게 아로새긴 김환기의 그림은 오늘 다시 봐도 마음을 파고든다.

이영란(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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