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자코메티의 예술세계] 대상의 본질 찾아 헤매다… 원시예술서 추상을 만나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1926년에 부부의 모습을 담아 완성한 조각. 이 작품에서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남성과 여성의 ‘핵심’을 표현했다. 필자 제공
 
기원전 4400년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여인상. 지금까지 발견된 이집트 최초의 인물상이다. 필자 제공
 
배철현 교수


혼돈(混沌)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는 스물한 살이던 1922년 위대한 조각가의 꿈을 꾸며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그는 프랑스 조각가이며 로댕의 수제자인 앙트완 부르델(1861∼1929)이 가르치고 있던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에 등록한다. 그는 아침 내내 그곳에서 부르델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오후에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조각 작업에 몰두하였다.

자코메티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구상화(具象化)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관찰한 대상에 대한 인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는 그런 시도를 영원히 포기한다. 이 결정은 그의 아버지이자 스승인, 아버지의 회화 세계와의 결별이었다.

‘있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는 조각 작품을 만들면서 절실하게 느꼈다. 자신이 대상을 표현할 수단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진흙이나 회반죽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재질과는 질적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살갗이나 눈을 진흙으로 표현하기란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작업한 무색의 조각 작품이 대상을 얼마나 기만했는지 실감하면서 수십 번 혹은 수백 번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다.

자코메티는 자신이 표현의 대상을 근접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깨달음에 좌절했다. 그는 일생을 바쳐도 조각 작품 하나를 완성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겉모습인 ‘형상’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 대상이 거대한 암흑 속에서 움직이는 작은 분자로 분해됐다.

예를 들어 코의 왼편과 코의 오른편 사이의 간극은 사하라 사막처럼 광대해 어느 것 하나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었다. 자코메티는 부르델의 스튜디오에서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1821∼1867)가 말했듯 “불행은 신이 천재에게 주신 은총”이었다. 자코메티가 만족할 만한 예술적인 표현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그는 다른 예술가들이 접근하지 못한 ‘예술적인 승화 단계’에 진입한다.

그는 스스로 혼돈 속에서 헤매고 있었지만, 그 혼돈은 예술이 숨을 쉬고 기초를 닦고 의미가 있는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하는 단초가 되었다. 그것은 마치 창세기 1장 2절에 등장하는, 우주가 탄생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창조 이전 혼돈상태다. 이 말씀에 나오는 ‘혼돈하고 공허하며’에 해당하는 히브리 단어는 ‘토후 와-보후’다. 이 단어는 어원이 불분명하다. 그것은 마치 입김을 깊게 불어 배가 꺼지는 상태를 흉내 낸 의성어임이 분명하다. 혹은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란 표현에서 ‘깊음’이다. ‘깊음’이란 바닥이 없는, 한없이 떨어지는 깊은 수렁과 같은 심연이다.

자코메티는 자신만의 창조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1920년대, 혼돈을 경험하면서 자신만의 예술적 질서를 찾는다. 그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넘어선 것처럼 당대 최고의 조각가 부르델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감을 모색했다.

그는 파리에 있는 박물관을 방문하면서 원시예술들의 충격적이며 과감한 ‘단순’과 ‘추상’을 경험한다. 1910년대와 1920년대 초, 유럽 예술가들은 남자와 여자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리스와 로마의 회화나 조각을 넘어 생경한 예술에서 그 실마리를 찾기 시작하였다. 특히 고졸기 그리스, 에게해 남부에 있는 키클리데스 아프리카 멕시코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새로운 예술품들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들의 예술은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원초적이며 노골적으로 여성의 몸과 남근을 생명의 원천으로 그대로 표현하였다.

모양(模樣)

그는 인간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질문에 집중한다. 남자란 무엇인가? 여자란 무엇인가? 자신의 아버지 지오반니 자코메티는 분명 남자였지만, 친절하고 여성스럽고 관대하였다. 그의 어머니 아네타 자코메티는 분명 여자였지만, 엄격하고 강직하며 생활력이 강했다. 그녀는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 전체를 먹이고 입히고 거주할 공간을 마련하는 가장이었다.

자코메티는 남성과 여성을 뛰어넘는 인간성을 찾으려 했다. 자코메티는 파리 인류 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에서 오세아니아 예술과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조각 작품에서 대상의 형상(形狀)이 아니라 형상 안에 숨겨진 모양(模樣)을 감지했다.

기원전 4400년쯤 고대 이집트 왕조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조각상이 발견된 적이 있다. 하마의 아랫니를 조각하여 만든 여인상이었다. 이 여인상은 이집트에서 발견된 최초의 인물상이다. 머리, 코, 그리고 눈이 유난히 크지만 몸 전체는 정교하게 조각되었고 전체가 정성스럽게 다듬어져 있었다. 지금부터 6400여년 전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실적이었다. 이 조각상은 장례식에 사용된 부장품이었다. 깊게 파인 눈과 동공, 그리고 눈썹은 채색되었다. 가슴이 강조되었고 양팔은 가슴을 밑으로 이어져 있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음부. 검은색 역삼각형으로 표시되어 있고 갈라져 있었다.

에게해 남부에 있는 키클리데스 군도의 델로스는 고대 그리스의 가장 중요한 신화적·역사적·고고학적 유적지다. 델로스는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의 신전이 있는 장소다. 이곳에는 디오니소스의 상징인 남근을 떠받치고 있는 직사각형 제단이 있다. 디오니소스는 풍요의 신이며 고대 그리스 비극과 종교 축제의 신이다. 포도주는 그리스 문화와 후대 종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부부

자코메티는 남성과 여성을 조각할 때, 그 대상이 상징하는 추상적인 ‘모양’을 표현했다. ‘모양’은 그 대상에 대한 인상이지 겉모습이 아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는 신이 인간을 ‘진흙’으로 빚어 만들면서 인간을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를 언급한다. ‘형상’과 ‘모양’이다.

기원전 6세기 한 유대인 저자는 신이 인간을 만드는 순간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인간 창조를 이해하는 두 히브리 단어는 ‘형상’을 뜻하는 ‘쨀램’과 ‘모양’을 가리키는 ‘더무쓰’다. ‘쨀램’의 심층적인 의미는 같은 어원을 가진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드어 ‘짤무’에서 찾을 수 있다. 분명 아카드어 ‘짤무’는 신상(神像)을 의미하지만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 있어서 신상은 바로 신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신이 ‘형상’에 내재해 있다고 믿었다. 자신이 관리하는 도시에 화가 난 메소포타미아 신들이 그곳을 떠나 다른 도시로 움직이는데, 이때 신들은 ‘형상’이 움직일 때 다른 곳으로 움직인다고 믿었다.

‘모양’을 의미하는 히브리 단어 ‘더무쓰’는 그 어원을 추적하기가 어렵다. ‘더무쓰’라는 단어는 ‘피’를 의미하는 ‘담’이란 히브리 단어에서 파생된 것 같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간을 히브리어로 ‘아담’이라고 불렀다. ‘아담’은 ‘붉은 흙’이란 의미다. 인간은 ‘붉은 색을 띤 진흙’으로 만들어진 만큼 ‘붉은 존재’라고 해석할 수 있다. ‘형상’을 겉모습으로 해석하다면, ‘모양’은 그 대상이 지닌 추상적인 핵심이다.

자코메티가 1926년 조각한 ‘부부’는 모양을 표현하였다. 그는 남성과 여성이 지닌 기호와 상징에 몰입해 프랑스 철학자 레비 브륄(1857∼1939)이 ‘원시인의 정신세계’에서 주장한,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며 인간의 논리나 심리로는 접근할 수 없는 원초적인 모습을 표현하려 했다. 이 작품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대상에 대한 ‘흉내’나 ‘재현’인 ‘미메시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원초적인 특징을 표현했다.

오른편에 서 있는 남성상의 큰 눈은 독창적이다. 남성의 오른손은 오른편에 손가락만 표시하였고 왼손은 몸 중간에 사선으로 걸쳐져 표현했다. 그 밑에 있는 배꼽을 표시하였고, 이 조각이 남성인지는 왼편에 서 있는 여성상을 통해서만 유추할 수 있다.

왼편 조각상 맨 위에 묘사된 부분은 눈보다는 입을 표현한 것 같다. 그 밑에 두 개의 동그란 융기 부분은 가슴을 표현하였고 양손 손가락으로 가상의 자리에 적절하게 묘사되었다. 그 밑에 타원형으로 묘사된 부분은 여성의 성기다. 생명의 근원이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독립적으로 서있는 모습을 발가락을 표시해 표현하였다. 자코메티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핵심을 상상하고, 그 모양을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위대한 조각가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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