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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전설’ 조지 웨아, 대통령 됐다

라이베리아 대선 후보 조지 웨아가 지난 26일(현지시간) 수도 몬로비아의 투표소에서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웨아는 이번 결선투표에서 61.5%(잠정)를 얻어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AP뉴시스


1996년 1월 웨아가 유럽축구 최고의 선수에게 주는 골든볼 트로피를 수상한 뒤 두 손으로 들어올리고 있다.


조국 라이베리아 대선 압승
73년 만에 민주적 정권교체
빈민가 출신… 생존 위해 축구
1990년대 유럽 최고 공격수
웨아 “이제 변화가 시작됐다”

라이베리아 대선 결선투표에서 국제 축구스타 출신 조지 웨아(51)가 조셉 보아카이(73) 부통령을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웨아는 라이베리아에서 73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지는 민주적 정권교체의 주인공이 됐다.

라이베리아 국립선거위원회(NEC)는 지난 26일(현지시간) 실시한 대선 결선투표에서 민주변혁회의(CDC) 소속 상원의원 웨아가 61.5%를 얻은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28일 발표했다.

웨아와 양자대결을 벌인 통합당(UP) 보아카이는 38.5%를 얻는 데 그쳤다고 현지 매체 GNN 라이베리아가 전했다. 최종 개표 결과는 정부가 다음 날 발표할 계획이지만 표차가 큰 만큼 승패가 바뀔 가능성은 없다.

웨아는 잠정집계 결과 발표 후 수도 몬로비아 외곽 중앙당사 발코니에 나와 인사했다. 그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제가 오늘 받아들인 막대한 임무의 중대함과 책임감을 생각한다”며 “변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곳곳에서는 지지자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웨아의 승리를 축하했다.

웨아는 몬로비아 빈민가 출신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축구를 시작했고 1990년대 유럽 프로축구에서 최고의 공격수로 활약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에게는 ‘흑표범’ ‘검은 다이아몬드’ 같은 별명이 붙었다. 이탈리아 AC밀란에서 뛰던 1995년에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최고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와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발롱도르 수상은 아프리카인을 비롯해 비유럽인으로는 최초였다.

웨아는 선수 시절 다져진 신화와 인기를 발판으로 2003년 축구계 은퇴 후 정계에 발을 들였다. 2005년 대권에 도전해 결선투표에서 엘런 존슨 설리프(79) 현 대통령에게 패했지만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며 높은 지지를 확인했다. 2011년에는 부통령(러닝메이트)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했다. 그는 2014년 상원의원에 당선되며 의회에 입성했다.

웨아는 다음 달 아프리카 최초의 민선 여성 대통령이자 201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설리프 대통령의 뒤를 잇게 된다. 라이베리아에서 무력충돌 없이 정권이 교체되기는 1944년 이후 처음이다. 해방된 미국 노예 출신들이 1847년 세운 라이베리아는 오랫동안 군부 독재와 내전을 겪으며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안토니우 구테레쉬 유엔 사무총장과 유럽연합(EU) 선거감시단 마리아 아레나는 이번 라이베리아 대선이 평화적으로 이뤄진 투표임을 강조했다. 미국 비영리단체 민주주의연구소(NDI)는 “지난 10월 1차 투표 이후 선관위가 눈에 띄게 향상됐다”며 결선을 평화적 투표라고 평가했다.

설리프는 내전을 종식시키고 에볼라 사태를 극복했지만 부패와 빈곤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웨아는 이번 대선에서 교육, 일자리 창출, 기반시설 확충 등을 중요 국정과제로 내걸며 지지층을 확보했다.

웨아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는 주얼 하워드 테일러 상원의원이다. 테일러는 전쟁범죄로 징역 50년형을 받은 찰스 테일러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의 전 부인으로 웨아의 정치적 약점으로 꼽힌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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