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자코메티의 예술세계] 스승인 아버지의 인상파 화풍 완벽하게 뛰어넘다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1921년 그린 자화상 속 인물의 시선은 우리를 향하고 있다. 필자 제공
 
자코메티가 좋아했던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가 13세 때 연필로 그린 자화상(왼쪽)과 뒤러가 28세 때 완성한 또 다른 자화상. 필자 제공
 
배철현 교수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프랑스 화가로 타히티에서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폴 고갱(1873∼1903)은 자신의 유작 그림 왼편 상단에 세 문장을 남겼다. 자신이 생각하는 세 가지 인생의 수수께끼 질문들이다. 이 질문들은 단호하고 진실해서 나를 항상 당혹스럽게 만든다.

첫째,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생물의 기원을 추적하는 과학자들은 생물을 무생물에서 생겨났다고 ‘믿는다’. ‘없음’은 ‘있음’의 모체라고 추정한다. 거의 신앙 수준이다. 138억년 전 ‘없음’을 기반으로, 빅뱅이라는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우주가 생겨났다고 믿는다.

둘째, “나는 누구인가?” 나는 세상의 수많은 동물들과 무엇이 다른가? 인간만이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간을 히브리어로 ‘아담(adam)’이라고 불렀다. ‘아담’은 ‘붉은 흙’이란 의미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풍년을 보장하는 옥토가 바로 ‘붉은 흙’이며 동시에 최고의 토기를 만들기 위한 흙도 ‘붉은 흙’이다.

인간에게 생명의 숨이 붙어있을 때, 인간은 ‘신의 형상’을 지닌 거룩한 존재지만, 그 숨이 사라지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허무한 존재다. 자신이 순간을 산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은 몇몇 인간들은 그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기술을 발견하였다. 그 기술이 바로 ‘예술’이다. 인간은 음악 미술 조각 농업 문자 그리고 도시 등을 만들어 문명을 구축하였다. 영국의 스톤헨지,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은 순간을 안타까워하는 인간이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고 싶어 만든 욕망의 물건들이다.

셋째,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사후세계에 한 번 들어서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 사후세계는 마치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과거와 같다. 우리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날쌔게 지나가는 과거와 성큼 성큼 다가오는 사후라는 미래 사이의 순간을 사는 존재들이다.

손도장

이런 질문들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인간은 자신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자신을 더 가치 있는 인간으로 진화시킨다. 인간은 기원전 3만5000년경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유인원)에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정말 지혜로운 유인원, 인간)가 되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는 쇼베 동굴에서 발견됐다. 쇼베동굴은 기원전 3만3000년 프랑스 남부 아르데슈 퐁다르크 지역에서 1994년에 처음으로 발굴되었다.

이 동굴은 매머드 들소 양 말과 같은 초식동물들 뿐만 아니라 사자 표범 곰 하이에나와 같은 육식동물들이 그림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마치 살아서 달리고 있는 것처럼 동굴 벽에서 유영하고 있다. 이 동굴 안에는 순간을 아쉬워하는 인간들이 남긴 특별한 작품들이 있다. 바로 손도장이다. 이 손도장의 주인은 아마도 이곳에서 수많은 벽화를 그린 예술가일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벽에 댄 채, 입에 황토색 염료를 머금고 손을 향해 뿜었다. 손 주변에 물감이 묻어 손바닥의 형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기법을 ‘네거티브 페인팅’이라고 부른다. 자신이 표현하려는 대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비우고 그 주위를 메움으로써 손바닥의 모양을 선명하게 표시하였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겸손을 언급한 빌립보서 2장 7절에 등장하는 “오히려 자기를 비워”라는 문구는 ‘네거티브 페인팅’의 한 예다. 이 문구에 대한 그리스어 원문은 ‘헤아우톤 에케노세’다. ‘비움’을 의미하는 ‘케노시스(kenosis)’는 수동적이거나 정적인 행위나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담보하여 자신이 모든 것을 혁신하겠다는 의지다. ‘비움’의 대상은 ‘헤아우톤’, 즉 ‘자기자신’이다. 자신을 온전히 비울 때, 비로소 자신이 빛난다. 인류 최초의 예술가가 자신의 손을 ‘빔’의 형식을 빌려 우리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빛나는 형식으로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오른손을 그렸다. 엄지가 짧고 두툼하다. 그는 특이한 세 번째와 네 번째 손가락을 지니고 있다. 이 두 손가락의 밑동은 거의 붙었다. 그는 이 손가락 흔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자신을 보는 도구, 거울

예술가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의 적나라한 표현이다. 특히 자화상(自畵像)은 자신의 외양뿐만 아니라 자신이 예술적인 탐구를 통해 발견한 ‘내면의 자기’를 드러낸다.

그들의 작품은 자신의 영혼에 대한 반영이며, 그것을 창작한 예술가의 자화상이다. 예술가는 선택과 강조라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개성과 열망을 담는다. 화가들이 자기자신을 회화의 대상으로 삼고,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시기는 르네상스 시대다.

인간은 중세의 ‘거대한 존재의 사슬’ 안에서 감금된 자신을 해방시켜, 자신 스스로 우주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화가들은 자신 스스로를 회화의 대상으로 삼고, 그 안에서 혁신적인 자아를 발굴했다. 화가 자신이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는 도구는 ‘거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시노페의 디오게네스(기원전 412∼323)는 젊은이들에게 거울을 자주 보라고 충고한다. 만일 거울 안에서 아름다움이 발견되면, 그 아름다움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야한다. 만일 거울 안에서 추함이 발견되면, 배움을 통해 추함을 제거하고 아름다움을 채워야한다. 거울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반추하는 도구다.

거울은 자신의 오만을 직시하게 만들고 위대한 자신을 항상 추구하게 만드는 스승이다. 그러므로 거울은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비추는 수동적인 반영의 도구가 아니라 나를 혁신시키는 능동적인 깨우치는 나팔이다.

뒤러의 ‘자화상’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첫 번째 스승은 당연히 인상파 화가였던 그의 아버지 지오반니 자코메티(1868∼1933)다. 자코메티에게는 화가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집안에 마련된 아버지 화실이 놀이터였다. 고향 스위스 말로야에는 자코메티가 성인이 되어서도 자주 들르던 여름 별장이 있었다.

이 별장은 그의 아버지가 화실로 사용하던 장소다. 자코메티는 어린 시절 아버지 그림을 한동안 모방하다가 한 예술가에게 특히 매료됐다. 독일의 화가이며 판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다. 뒤러는 화가일 뿐만 아니라, 과학자이자 철학자였고 연금술에도 정통한 학자였다. 자코메티는 뒤러의 동판화 ‘기사화 죽음과 악마’(1513)를 14세에 습작한다. 뒤러는 이 그림을 통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잔인할 정도로 짧은 인생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켰다. 오로지 신앙으로 무장한 그리스도교 기사만이 진리를 수호하고 항상 주님을 수호하여 죽음과 악마를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선포하였다.

뒤러는 아마도 가장 어린나이에 자화상을 그린 화가일 것이다. 1484년 그는 13세 때, 무엇인가를 신비하게 응시하고 있는 자신을 연필로 그렸다. 그의 눈은 관찰하는 대상을 꿰뚫어 볼 뿐만 아니라, 그 대상의 내면의 모습까지 포착했다. 그의 왼손은 상의 안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지만 오른손은 화가의 손답게 섬세하고 대담하게 그렸다. 엄지와 검지를 뻗어 무엇인가를 쥐고 있는 모습이다.

자코메티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죽은 1913년부터 슬픔을 달래기 위해 뒤러가 28세 때 그린 ‘자화상’을 습작했다. 이 그림의 또 다른 제목은 ‘털 깃으로 장식된 코트를 입은 28살 인간에 대한 자화상’이다. 뒤러는 자신을 그리스도 모습으로 그렸다. 이 그림에서도 그의 왼손은 보이지 않고 오른손만 표현되었다. 털 깃을 만지는 들어 올린 오른손은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을 마치 강복하는 모습이다. 자화상 오른쪽엔 “나, 누렘부르크 출신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살에 지울 수 없는 색으로 내 자신을 그렸다”라고 자신 있게 적었다.

자코메티의 ‘자화상’

자코메티는 1919년 봄 스위스 쉬어스에 있는 김네지움(고등학교)을 중퇴한다. 하지만 이 시기는 자코메티가 스스로 일어서는 중요한 ‘경계적 시간’이었다. 그가 소년에서 청년으로, 습작에서 창작으로 변화하는 시기다. 그는 그때부터 파리로 간 1922년까지 스위스 현대예술가들과 유럽의 전통예술가들의 조각 소묘 그리고 회화를 두루 섭렵해 공부한다.

그는 1921년 자신을 독립적인 예술가로 선포하는 유화 한 장을 그린다. ‘자화상’이다. 이 그림은 그가 그린 큰 그림들 중 하나다. 그는 자신이 표현하려는 의도를 확실한 붓 터치와 다양한 밝은 색을 자유롭게 사용해 자신의 스승인 아버지 지오반니의 후기 인상파 화풍을 완벽하게 극복했다. 이 자화상은 자코메티가 예술에 자신의 인생을 바치겠다는 매니페스토다. 이 그림은 그가 자신이 태어난 스위스 스탐파를 떠나 예술의 중심인 프랑스 파리로 가겠다는 선언이다. 자코메티는 우리를 화면 전체로 초대하지만, 자신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시선을 교환할 것을 요구한다. 거울에 비친 거울상이다. 그가 의자에 불안하게 걸터앉아 한 손으론 팔레트를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으로 이젤에 그림을 그린다. 치켜 든 고개, 굳게 닫은 입술, 그리고 사선으로 나를 응시한다. 그는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