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푸른 추상

남관 ‘반영’. 캔버스에 유채, 콜라주. 1988. K옥션


푸른 색 화폭에 상형문자 같은 형상들이 부유하는 이 그림은 남관 화백(1911∼90)의 작품이다. 해독하기 어려운 문자들은 신라고분에서 나온 금관 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하다. 작가는 캔버스에 한지를 콜라주하듯 붙인 뒤 물감을 입히거나, 붙였던 종이를 떼내며 추상작업을 했다. 때문에 유화임에도 매끄럽지 않고 질박하다.

경북 청송 출신의 남관은 열네 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학교 시절부터 뛰어난 표현력으로 일본의 미술전을 휩쓸었다. 광복과 함께 귀국한 후에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도쿄비엔날레를 관람하고 자극 받아 프랑스행을 결행했다. 서울에서 안주할 수 있었으나 새 무대를 노크한 것. 당시 남관은 혹독한 고비를 견뎌낸 폐허라든가 유적지를 추상언어로 장중하게 그려내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1962년 작인 ‘허물어진 제단’은 파리시가 시립미술관용으로 컬렉션했고 1966년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는 피카소, 타피에스를 누르고 1등상을 받았다. 미술평론가 가스통 디일은 “동서양 문화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둘을 융합시킨 거의 독보적인 작가”라고 평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심상(心象)의 세계를 심오하게 표현한 것에 호응이 이어진 것. 이후 남관은 귀국해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일련의 ‘푸른 추상’을 선보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가 파리에 좀 더 머물며 쟁쟁한 작가들과 끝까지 겨뤘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에 가정은 없다지만 아쉬움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영란(미술칼럼니스트)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