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는 시대다] 국난의 멜로드라마, IMF 시대의 환상과 눈물


 
영화 ‘약속’에서 헤어지기 직전 성당에서 언약식을 하는 공상두와 채희주. 전주 전동성당은 ‘약속’의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약속’은 이서진 김정은 주연의 TV 드라마 ‘연인’(2006)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당시 금 모으기 캠페인 현장. 필자 제공
 
김유진 감독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한다는 내용을 공식 발표한다. 1997년 11월 21일이었다. 이른바 외환위기에 따른 국가 경제 대란의 시기가 도래했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대기업과 은행들이 연쇄 부도했으며 구조 조정의 칼바람이 거셌다. 출근한다고 집을 나와 공원과 산에서 몰래 시간을 보내다가 퇴근한 척 집에 가는 실직 가장들이 생겨났다. 할 거 없으면 공무원이나 하라던 말은 당치도 않은 말이 되었다. 9급 공무원은 안정된 직장의 표상으로 떠올랐다. 출산율은 급격히 낮아졌고 서민경제생활은 말할 수 없이 궁핍해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취임사에서 “6·25 이후 최대 국난”이라고 표현했다. 눈물의 시대였다.

때맞춰 눈물의 장르인 멜로드라마가 90년대 후반 한국영화계를 압도했다. 1997년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에 오른 ‘편지’(1997)가 대표적인데, 당대의 전문가들은 ‘편지’를 두고 과거에 유행한 최루성 멜로 영화의 답습이라는 합당한 비판을 내놓았다. 그렇다 해도 멜로드라마 자체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는 쉽게 식지 않았다. 다음 해인 1998년 한국영화 흥행 1위 자리는 또 한 편의 멜로드라마가 차지했다. ‘약속’이었다.

카지노 사업체를 운영하는 조직 폭력배 두목 공상두(박신양)는 괴한의 피습을 받아 부상을 입고 입원 중이다. 그의 담당 의사는 솔직하면서도 당당한 채희주(전도연)다. 공상두는 채희주의 모습에 매력을 느낀다. 밀고 당기는 몇 차례의 구애 끝에 둘은 연인으로 발전하고 공상두의 사업에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두 사람은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경쟁 조직원들에 의해 아끼는 수하가 살해당하자 공상두는 살인으로 복수하고 그가 저지른 범행은 그의 충직한 부하 엄기탁(정진영)이 뒤집어쓰기로 한다. 하지만 공상두는 자수하기로 결심하고 채희주에게 작별을 고한다.

‘약속’은 깡패영화와 멜로드라마의 공식이 적절히 결합된 결과물로 당대에 인식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다시 마주하고 보니 새로운 면모가 보인다. 특히 공상두라는 인물형에 관한 부분들이 그렇다. 우리가 지난 두 번의 지면에서 다룬 ‘초록 물고기’ ‘넘버 3’의 주인공들을 환기시키고 싶다. 세 영화의 인물들은 같은 ‘깡패’라도 지향하는 바가 저마다 다르다. ‘초록 물고기’의 막동이는 몰락하는 순정이었다. ‘넘버 3’의 조필은 조롱과 야유의 기호였다. 그렇다면 ‘약속’의 공상두는 무엇이었는가.

반전의 이미지가 하나 있다. 주인공 공상두는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가 지나서도 얼굴이 공개되지 않는다. 크게 다쳐 붕대를 감고 있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그가 붕대를 풀러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 채희주가 깜짝 놀라는 장면을 영화는 주의 깊게 클로즈업한다. 채희주는 친구에게 “깡패 두목이라고 해서 우락부락할 줄 알았는데 ‘청초’해서 놀랐다”고 고백한다. 공상두의 청초함, 그러니까 맑고 깨끗한 이미지에 채희주는 첫눈에 반한다. 공상두의 청초함의 이미지는 얼굴만이 아니라 구애의 과정 중 발견되는 그의 행동에서도 강조되는데, 그것이 그에게 순수하고 미숙한 그래서 더 매력적인 소년의 이미지를 심어준다. 공상두는 청초한 소년이다.

더 중요한 반전의 이미지가 있다. 수하들이 무법천지로 병원을 어지럽히자 공상두가 한마디 한다. “여기 병원 아닙니까. 좀 젠틀하게 합시다.” 그러고 보면 공상두를 두고 깡패라기보다 사업가로 불러도 좋겠다. 그는 영화 안에서 폭력을 자주 쓰지 않는다. 그가 폭력을 쓰는 경우는 제한적이다. 상대가 젠틀하지 않거나 사랑하는 여인을 해하려 하거나 아끼는 부하의 목숨을 앗아갈 때다. 그의 폭력은 정당방위로 그려진다.

그는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사업을 하거나 사랑을 한다. 사업을 해서 성공한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그 품위를 재력으로 유지하며 풍족한 사랑을 한다. 가난하고 각박한 주인공들 천지였던 당대 깡패영화에서는 희귀한 주인공이다. 더군다나 그의 재력이 강조되는 방식을 감안하자면, 그는 흔하게 성공한 사업가를 넘어 낭만적 재벌의 이미지에 더 가깝다. ‘약속’에는 사실, 깡패 서사가 아니라 재벌 서사가 가동된다.

‘약속’은 원작이 있는 영화다. 영화의 각본가인 이만희가 극작하여 1996년에 초연했던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가 원작인데, 영화와 연극은 많은 차이를 지녔다. 무엇보다 연극은 2인극 설정이다. 무대에는 공상두와 채희주만이 존재하게 되고 다른 인물들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때 연극은 영화가 공들여 강조하는 공상두의 재력의 형상화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영화는 다르다. 한 장면을 예로 들자. 공상두가 구애의 선물로 보낸 중형차와 소형차를 채희주가 차례로 거절한 뒤, 중요한 건 마음이라고 전하자, 공상두는 마음 심(心)자 깃발이 꽂힌 장난감 차를 선물하여 마침내 구애에 성공한다. 이 장면은 보이는 그대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관객인 우리 중 누군가에게는, 아니 어쩌면 IMF의 시기를 살아가는 다수에게는, 채희주가 요구한 그 순서와 정확히 거꾸로 된 순서로 강력한 환상이 작동했을 법도 하다. 마침내 마음만이 통하는 장면이라고 보는 건 오해다. 공상두의 청초한 마음은, 소형차도, 중형자도 선물해 줄 능력이 있기에 더 매력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방점을 채희주로 놓고 본다면 ‘약속’은 동시대를 자극하는 신데렐라 서사의 환상과 실패에 초점이 맞춰지기도 한다. 채희주는 자신의 월급이 150만원이라며, 깡패 짓은 그만두고 그 돈으로 함께 살자고 공상두에게 제안하는데, 그때 공상두는 그녀가 귀엽다는 듯이 웃는다. 채희주는 비교적 전도유망한 전문직 여성이고 1998년의 150만원은 웬만한 4년제 대졸 사원의 초봉 정도는 되는 금액이다. 그럼에도 정작 중요한 것은 직업과 월급의 유능함이나 규모가 아니라 영화가 채희주에게 강하게 부여하고자 하는 어떤 이미지다. 영화는 채희주에게 병든 홀아버지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힘겨운 가장의 이미지를 부여하려 애쓴다.

이 점에서 채희주를 사이에 둔 그녀의 아버지와 공상두의 관계 설정은 흥미롭다. 채희주에게 아버지는 보살펴야 할 존재이면서도 벗어나고 싶은 짐이다. 공상두 덕분에 밀린 아버지의 병원비를 갚지만 행운과 도움은 거기서 그친다. 아버지가 위독해지는 순간에 채희주는 공상두와 침대에 있었고 그래서 죄책감을 느낀다. 혹은 아버지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순간에 공상두는 어딘가에서 살인자가 된다. 채희주는 아버지도, 공상두도 동시에 모두 잃는다. 가족 멜로드라마 구조 안에서의 낙관적 결말도, 신데렐라 서사의 최종적 성공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는 홀로 남겨진다. 재벌서사의 환상을 정리하고 신데렐라 서사의 실패를 확인하면서 공상두가 이끄는 어떤 멜로드라마의 한 단계로 접어들어 마쳐야 한다고 영화가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공상두의 도덕적 선택에 최종의 장을 맡긴다. 이 길목에서 우린 멜로드라마에 관한 다음과 같은 언급을 떠올리게 된다. “멜로드라마는 사실 전형적으로 도덕주의적인 드라마일 뿐만 아니라 도덕성에 관한 드라마이다.”(피터 브룩스, ‘멜로드라마적 상상력’) 이 말이 대상으로 삼은 시대와 나라와 종류가 ‘약속’의 그것과는 크게 다르기는 해도, 이 말뜻 자체는 이 영화의 정점에서 거의 절대적 힘을 발휘한다.

공상두는 마침내 막동이와도 조필이와도 다른 길을 간다. 막동이가 몰락하고 조필이가 우스워지는 것이라면 공상두는 우월해진다. 자수를 선택함으로써 그가 성취하게 되는 것은 도덕적 우월함이다. 깡패가 주인공이지만 ‘약속’에는 경찰이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공상두를 범죄세계에 연루시키지 않으려 한다. 심지어 영화는 공상두가 살인을 저지를 때조차 법적으로는 잘못하지만 도덕적으로는 옳은 일을 행하는 것으로 눈감아 주는 것 같다. 공상두는 죄도 죄의 대가도 전부 자신의 도덕적 판단과 행위에서 스스로 감수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므로 공상두는 소년이고 재벌인데, 그걸 넘어 도덕의 완수자다.

IMF 사태가 터지자 가장 먼저 호소된 건 애국심, 즉 국민적 도덕이었다. ‘금 모으기’ 캠페인이 대표적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자수하러 떠나는 공상두의 먼 뒷모습이다. 도덕적 책임을 걸머지는 누군가의 뒷모습이야말로 우리가 보고 싶었던 당대 이미지였다고 확언하는 건 지나친 도식일 것이다. 다만, 청초함을 일깨우고, 풍요로운 물질적 환상도 자극하고, 도덕적 책임까지도 지고야 마는 다양하고 완벽한 이 인물이 눈물의 시대인 그때에 우리들의 환상을 자극하는 매혹적 현현 중 하나로 등극했던 건 확실한 것 같다.

▒ 김유진 감독
1985년 영화계 투신… ‘약속’으로 이름 알려


김유진(67·사진)감독은 중앙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했다. 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연극에 몰두했다. 대학 졸업 후 무역업에 종사한 적도 있으나 이내 퇴사, 1985년에 친구인 이춘연(현 씨네2000 대표)과 함께 대진엔터프라이즈를 설립, 데뷔작 ‘영웅연가’(1986)를 만든다. 어느 예식장의 불황에 얽힌 소동과 인물들을 중심으로 하여 물질만능주의를 풍자하는 영화였다. 두 번째 영화 ‘시로의 섬’(1988)을 만들었지만 흥행도 화제도 낳지 못했다. 세 번째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1990)는 얼마간 사회적 이슈를 만들었다. 골목에서 강제 키스하려는 남자의 혀를 물어서 절단시킨 죄로 법정에 서게 된 한 여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다. 당시까지 흔히 다뤄지지 않았던 여성 문제를 법정 드라마 형식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얻었다. 가족영화 ‘참견은 노, 사랑은 오 예’(1993)도 만들었지만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근대 조선의 예술가 이상과 구본웅 그리고 그들과 연을 맺은 기생 금홍을 중심으로 한 사극 ‘금홍아, 금홍아’(1995)도 만들었다. 말 그대로 무척 다양한 영화를 만들어 온 이력을 지닌 셈이다. ‘약속’의 원작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를 알게 됐고 원작자 이만희에게 각본을 맡기며 영화 ‘약속’을 연출, 일약 흥행 감독의 대열에 오른다. 이후 퍽치기 일당을 뒤쫓는 형사들의 이야기인 ‘와일드 카드’(2003), 세종 재위 시절 새로운 화기 개발을 소재로 한 ‘신기전’(2008) 등을 만들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에서는 벌써 50대 감독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그때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50대 감독이었다.

<정한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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