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 세워진 美 대사관
미술관처럼 세련된 외관
건축 비용만 1조원 이상
보안장비 눈에 안띄지만
최첨단 방어시설 갖춰
영국 런던의 미국 대사관이 현대미술관을 연상시키는 랜드마크로 변신했다. 1조860억원을 들인 신축 미 대사관은 경비와 보안을 위해 숨은 요새처럼 짓던 기존 관행을 깨고 템스강변에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들어섰다. 크리스털 큐브 같은 건물을 두꺼운 장벽 대신 연못으로 두르고 나무 벤치까지 설치하는 등 도심 공원처럼 꾸며졌다.
신축 미 대사관은 공격에 대한 모든 방어 방법을 숨기면서 개방성을 발휘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보여준다는 게 디자이너들의 설명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13일(현지시간) 전했다. 건축 비용은 10억 달러로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비싼 대사관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대사관은 이날 언론을 대상으로 사전공개 행사를 열고 처음으로 내부를 공개했다.
내년 1월 16일 공식 개관 예정인 새 청사는 울타리가 없는 공공 공원 한가운데 거대한 유리 결정체처럼 우뚝 서 있어 외관만 봐서는 관공서로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동안 런던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미 대사관은 위압적이거나 튀지 않는 모습으로 지어졌었다.
WP는 “이 도시(런던)가 테러 공격의 표적이 돼 왔음에도 새 대사관은 ‘스파이가 여기서 일한다!’거나 ‘물러 서!’라고 소리치지 않는다”며 “대신 현대 박물관 같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외관 사방을 유리로 뒤덮은 16층짜리 정육면체 건물은 설탕을 입힌 것처럼 반짝여 ‘슈거 큐브’라는 별명을 얻었다. 새 대사관에는 유리 통로와 네온 조각상, 매끄러운 원목 벤치 등이 곳곳에 놓였고 10여개의 하늘 정원이 마련됐다. 내부에는 술집과 운동시설, 우체국 등이 있고 여러 위치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조망할 수 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주변은 폭탄 공격 등에 대비한 장벽 대신 재생수를 활용한 폭포와 깊은 도랑이 있는 연못으로 둘렀다. 새 청사는 지하에 자체 폐수처리시설을 갖추고 있다. 지붕에 설치한 태양열 집열기는 건물을 작동시키고 여분의 전기를 송전망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미 대사관 측은 겉보기에는 보안시설이 눈에 띄지 않지만 최첨단 보안설비를 갖춰 가장 안전한 대사관이라고 설명했다. 건물 외벽 두께는 15㎝가 넘고 연못의 폭은 최대 30m가 넘는다. 폭탄 트럭 공격 등에 대비한 설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세 이래 런던 중심부에 들어선 최초의 해자(성 주변에 판 연못)가 있는 건물”이라고 설명했다.
대사관은 길가에서 약 30m 떨어진 언덕 위에 위치해 쉽게 공격하기 어렵도록 했다. 주변에 높은 풀을 심고 8t 트럭을 막을 수 있는 강철·시멘트 차량진입 방지 말뚝을 설치할 예정이다. 폭포에도 방어벽이 숨겨져 있다.
우디 존슨 런던 주재 미국대사는 기자회견에서 “새 미 대사관은 영국과 미국 간 관계가 단단하고 더욱 발전할 것임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신호”라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