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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소리·공간·시간에서 찾는 작은 기쁨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언덕에 서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들. ‘소소한 즐거움’ 저자는 번잡한 공간 한 벽에 사이프러스 사진을 붙여 두라고 한다. 흔들림 없이 차분하게 서 있는 이 나무의 자태가 고요한 즐거움과 인내심을 주기 때문이다. 와이즈베리 제공




“행복해지려면 작은 즐거움을 누려야 해요.” “평온해지려면 이렇게 해 보세요.” 이런 단순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면 서점에 이미 수두룩하다. 이 책들도 제목만 보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다. 그런데 저자를 보면 펼쳐보고 싶은 맘이 든다. 저자는 스위스 출신의 유명 작가 알랭 드 보통(48)이 세운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

2008년 영국 런던에 처음 설립된 인생학교는 다양한 출판물을 내고 강연을 열고 있다. 현대인이 겪는 삶의 문제에 대해 지혜와 통찰을 주기 위해서다. 이 책도 그런 목적으로 나온 신간이다. 보통을 비롯한 인생학교팀이 기획하고 썼다. 보통의 저서 ‘불안’ ‘여행의 기술’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등을 재밌게 읽었다면 두 책의 조언도 흥미로울 것이다.

‘소소한 즐거움’(Small Pleasures)에는 작은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52가지 장면이 소개돼 있다. “깊은 밤에는 마음속에서 중요하고 커다란 어떤 것들이 마침내 깨어나 숨을 쉬기 시작한다. 밤은 일상의 온갖 요구와 책무에서 나를 구제해주는 시간이다.”(‘깊은 밤 깨어 있는 시간’ 중) 환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창문 사진에 이어지는 글이다.

모두 잠든 시간 혼자 앉아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메모를 해본 기억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공감될 것이다. “밤하늘을 머리에 이고 열린 창가에 앉은 순간에는, 단지 나와 우주뿐이다. 끝없이 펼쳐진 우주의 작은 한구석 내 자리를 잠시나마 누려본다.” 책 곳곳의 시적인 묘사는 은밀한 기쁨을 소중히 간직하고 또 실행하는데 도움을 준다.

바닷고기가 퍼덕이는 생선가게, 멍하게 창밖 바라보기, 오래된 스웨터, 휴일 아침의 여유, 목욕 등이 나온다. 저자는 “삶의 기쁨과 행복을 찾는 방법은 배워야 한다”며 “일상 곳곳의 작은 기쁨이 그 출발점”이라고 한다. 책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일상의 즐거움을 확인하게 한다. 샤워를 하거나 잠시 창밖을 내다보는 게 큰 결단이 필요한 일은 아니니까.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기엔 내 일상이 너무나 평온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평온’(Calm)은 우리가 평소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려주면서 평온을 깨뜨리는 불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서적 기술을 알려준다. “우리가 갑자기 화를 내는 이유는 대부분 너무 서두르기 때문이다. …조금만 시간을 내 자신의 마음을 살펴본다면 분노 뒤에는 자신의 약점에 대한 수치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분노나 불안은 대개 자기 감정을 제대로 느끼거나 처리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 책은 마음의 평온이 깨진 순간을 들여다보도록 안내하면서 소리 공간 시간 등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준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한다. “불안은 우리의 기본적인 상태다. 우리는 지극히 연약한 존재이고 평안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사랑에 의존하기 때문”에 불안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책은 팍팍하고 건조한 일상에 주는 처방전처럼 다가온다. 한해를 결산하고 새해 다짐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될 듯하다.

보통은 “인생을 살아가는 한 누구도 공부가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대화하는 법, 나이 드는 법, 용서하는 법 등을 계속 배우라고 한다. 그의 말을 따라 인생학교에 입학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인생학교의 가르침을 담은 책 ‘인생학교’(2013) 시리즈도 있고 강연을 실제로 들을 수 있는 인생학교 서울 캠퍼스도 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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