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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지원에도… 성추문에 텃밭서 무릎 꿇은 공화당

미국 앨라배마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로이 무어 공화당 후보가 12일 몽고메리시에서 선거 패배를 인정 못하겠다고 연설한 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연단을 떠나고 있다. AP뉴시스


무어를 꺾고 승리한 더그 존스 민주당 후보가 부인과 함께 버밍엄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P뉴시스


앨라배마주 상원의원 보궐선거
공화당 무어 후보 충격적 패배
민주당 후보, 25년 만에 첫 당선
대선 압승했던 지역… 트럼프 타격
내년 중간선거 지각변동 예고

공화당 텃밭인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집권 공화당이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상원에서 공화·민주 의석 차이는 단 2석(51대 49)으로 좁혀졌고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과반 확보로 역전할 가능성이 커졌다. 미성년자 성추행이라는 치명적인 흠결이 제기된 자당 후보를 적극 밀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체면을 구긴 수준이 아니라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은 12일(현지시간) 보선에서 민주당 더그 존스(63) 후보가 49.9% 득표로 공화당 로이 무어(70) 후보(48.4%)를 눌렀다고 보도했다. 나머지 1.7%는 공식 후보 명단에 없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낸 비율이다. 무어 후보를 싫어한 공화당 지지자들이 이런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표가 전부 무어에게 갔다면 승자는 바뀌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트윗으로 존스 후보의 승리를 축하하면서 정식 후보가 아닌 이를 택한 투표가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지적했다. 무어는 패배를 즉각 인정하지 않고 재검표를 요구했다.

백악관과 가까운 한 소식통은 CNN방송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치명적인 결과로 지진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릭 샌토럼 전 공화당 상원의원도 “공화당에 (내년 11월 중간선거에 관한) 확실한 경고사격”이라고 평가했다.

앨라배마주에서 민주당 상원의원이 나온 것은 1992년 이후 처음이다. 이곳은 불과 1년 전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28% 포인트 차 압승을 거둔 지역이다. 지난달 지방선거 3곳을 휩쓴 데 이어 공화당 텃밭을 무너뜨린 민주당은 상원 과반을 탈환할 호기를 맞았다. 내년 중간선거에서 의원 3분의 1(33석)이 다시 선출된다. 선거 대상 주(州) 가운데 공화당이 잡고 있는 곳은 8곳, 민주당 지역은 25곳이다. 민주당이 기존 지역을 모두 지키고 2곳 이상 뺏어오면 상원 다수당이 된다. 현재 공화당 지역 중 3곳(애리조나·네바다·테네시 주)이 경합지역으로 분류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인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강력 지지한 판·검사 출신 무어는 30대 검사 시절 10대 소녀들에게 성적으로 접근했다는 폭로로 발목이 잡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공화당 지도부는 미성년자 성추행 이미지가 당에 덧씌워지는 것을 우려해 그를 외면했다. 최근 미국에선 성폭력 피해 경험을 SNS에 올리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이 맹위를 떨쳐 성추문에 휩싸인 현역 의원 여럿이 낙마했다.

깜짝 승자가 된 존스는 검사 출신 정치 초년생이다. 그는 63년 앨라배마주 버밍엄 흑인교회 폭탄테러를 자행한 백인우월주의단체 쿠클럭스클랜(KKK) 단원 4명 중 2명을 2002년 기소하고 종신형 판결을 받아낸 일로 명성을 얻었다.

존스는 이번 선거에서 흑인과 고학력 백인 유권자를 집중 공략했다. 왕년의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찰스 바클리가 유세에 동참해 흑인 표심을 잡는 데 일조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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