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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식물인간 통해 ‘나’를 찾아가는 과정 그려



한 번도 주인공을 맡은 적 없는 무명의 여배우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15년째 연극 무대에 서는 베테랑 연기자인데도 그의 수입은 변변찮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새로운 일거리가 생긴다. 11년째 식물인간 상태인 생면부지의 여성을 간병하는 일이다. 주인공은 이 여성이 있는 경북 경주로 향한다.

‘너는 너로 살고 있니’는 주인공이 이 여성에게 띄운 편지를 그대로 옮긴 서간체 소설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대만에 살고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친구는 묻는다. “너는 너로 살고 있지? 나는 나가 없다.”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인데, 주인공의 마음은 흔들린다. ‘나가 없다’는 건 무슨 뜻일까. 나는 나로 살고 있는 걸까.

지독한 허무에 시달리다가 택한 경주행. 하지만 그는 “화분에 담긴 식물처럼”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를 마주하면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가만가만 당신 손을 마사지하던 나는 한순간 뿌리치듯 당신 손을 놓아버립니다. 당신 손이 죽은 새라도 되는 듯. 내 몸이 당신 몸의 일부 같은 착각이 들어서였습니다.”

편지에는 수차례 이런 문구가 등장한다. “내가 보이나요” “나는 아직도 당신에게 가고 있는 중인가요”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인가요”…. 광막한 우주 공간 너머에 있는 상대를 향해 띄우는 이런 메시지는 주인공이 자기 자신에게 전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죽은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던 주인공과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살아있는 환자를 대비시켜 독특한 질감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 작품을 쓴 소설가 김숨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읽은 적 있는 독자라면 그가 얼마나 섬세하게 이야기를 그려나갔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사의 문턱에서 씨름하는 다양한 조연들의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책장 곳곳에 등장하는 화가 임수진의 목판화 작품은 교교한 감흥을 자아낸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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