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뻔뻔한, 그러나 감탄스러운 미술

데미안 허스트 ‘잘린 메두사의 머리’


그리스 신화 속 메두사는 삼단 같은 머리채가 무척 고혹적이었다. 아름다운 메두사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사랑을 나누자 아테나 여신은 분노해 괴물로 만들어버린다. 머리카락이 뱀으로 변해가며 절규하는 메두사를 조각으로 표현한 작가는 영국의 데미안 허스트(51). 카라바조의 걸작 ‘메두사의 머리’(1598)를 3차원으로 변환한 뒤, 녹색의 공작석을 깎아 입체로 만들었다. 독사에 짓눌린 메두사의 최후가 섬뜩하다.

허스트는 지난주 베네치아에서 막을 내린 블록버스터급 컴백쇼로 또다시 파란을 일으켰다. 이미 상어를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집어넣은 작업으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엽기적으로 드러냈던 그는 이번에도 엄청난 이슈를 만들어냈다. 미술계 실력자(피노 케링그룹 명예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750억원을 들여 베네치아의 대형 미술관 두 곳을 꽉꽉 채우며, 난해한 현대미술에 기름을 끼얹어 활활 타오르게 했다. ‘믿을 수 없는 난파선에서 건진 보물’이란 콘셉트하에 2000년 전 침몰선에서 동서양 진귀한 보물이 쏟아져 나왔다며 이를 시현한 것.

전시한 유물들은 분명 가짜지만 치밀한 상황 설정과 완성도 때문에 진실과 허구, 역사와 예술에 대해 묻게 만든다. 미술이 이렇듯 엉뚱한 상상력을 구체화하며 예술적 토대를 넓힐 수 있다니 기함할 노릇이다. 개막 초 일부 전문가는 허스트의 파산을 점쳤으나 웬걸, 매출이 최소 4000억원대란다. 이쯤 되면 단순한 악동 작가가 아니라 두둑한 배짱의 악마 사업가다.

이영란(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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