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겨울 冬(동), 담글 沈(침)+이 ‘동치미’



겨울 저녁해가 후딱 가고, 지금은 밤도 아닌 밤 9시쯤이면 출출해졌습니다. 쪄 둔 고구마가 생각날 때 뒤꼍에 몸을 통째로 땅에 박은 김칫독으로 갑니다. 독 뚜껑을 열면 살얼음이 져 있는 가운데 청청한 댓잎이 장중을 휘어잡고 있지요. 허연 대파와 큼직한 청고추들은 오돌오돌 떨고 있고. 국물 두어 사발 뜨고, 아이 장딴지만한 통무 몇 개 가져다 쭉쭉 잘라서 고구마와 함께 서걱서걱 먹었던 것입니다.

‘동치미’입니다. “이거면 된다. 마셔라.” 자식이 체했다 싶으면 엄마는 한 사발 떠다 입에 갖다 대 주셨지요. 요새 이것을 먹을 때면 동치미 국물 같은 짭조름한 뭔가가 마음 안으로 똑똑 떨어집니다.

동치미는 소금에 절인 무에 끓인 소금물을 식혀서 붓고 댓잎, 청각, 고추, 대파 등을 넣어 심심하게 담근 무김치입니다.

동치미는 ‘동침(冬沈)’에 접미사 ‘이’가 붙어 연음된 것이지요. ‘다리미’(다림+이)처럼. 김장의 출처인 침장(沈藏)이나 김치의 원말인 침채(沈菜)에서 보듯 沈은 담근다는 뜻이니 冬沈도 ‘겨울에 담가 먹는 것(무김치)’이라 하겠습니다. 이북에서는 동치미 무 또는 동치미 만들 무를 ‘동침무우’라고 한다는데, 冬沈의 현재형으로 보입니다.

고춧가루가 들어간 김치는 배추든 무든 끓여먹고 볶아먹고 지져먹고 부쳐도 먹는데 동치미는 그냥 얼음 동동 차가워야 제맛이지요.

글=서완식 어문팀장, 삽화=전진이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