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가을에 털갈이해 돋은 가는 털 ‘추호’



추위에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겠는데, 방한(防寒)과 보온(保溫)입니다. 밖의 냉기를 막는 게 방한이고, 안의 체온을 뺏기지 않는 것이 보온이지요.

피치 못해 가축이 되어 양돈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돼지나 순치(馴致)를 거부하고 산중을 배회하며 섬뜩한 눈빛으로 인간계를 노리는 멧돼지 같은 짐승은 비장의 무기인 두꺼운 비계로 추위를 버티지요. 사람은 불을 피우거나 옷을 지어 입어 겨울을 납니다. 비계도 충분하지 않고, 사람처럼 손을 쓸 수 없는 짐승들은 마냥 손놓고 있을까요. 몽땅 얼어 죽지 않은 걸 보면 무슨 대책이 있겠지요. ‘추호(秋毫)’입니다.

겨울을 나야 하는 짐승들은 찬바람이 불면 털갈이를 하는데 이때 돋아난 가는 털이 추호입니다. 두꺼운 옷 한두 개 입는 것보다 얇은 옷 여러 개 입는 게 훨씬 따뜻한 것처럼.

추호는 가늘다는 뜻에서 ‘매우 적거나 조금’인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입니다. 毫는 붓촉, 즉 붓의 털끝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붓을 들어(휘둘러)’ 글씨를 쓰는 것을 휘호(揮毫)라고 하지요. 揮는 손을 들어 군(軍)을 지휘한다는 뜻의 글자입니다.

“나는 뇌물을 받은 적이 추호도 없다.” “나의 말에는 추호의 거짓도 없다.” 얼마 못 가 들통이 나는데도 태연히 이런 말들을 합니다. 추호는 일단 부정하고 보는 데만 쓰는 말이 아닙니다.

글=서완식 어문팀장,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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