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기술이 발전할수록 불편한 음악가들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함께 라벨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4차 산업혁명은 문화계 안에서도 무시 못 할 이슈다. 그 혁명의 실체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회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첨단 기술의 발전이 예술계에 지각변동을 가져오리라는 점에는 백번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 아니, 굳이 4차혁명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미 첨단 기술은 공연예술계, 특히 음악계의 지형을 상당 부분 바꾸어 놓았다. 돈과 시간과 발품을 들여 공연장에 찾아와야만 향유가 가능했던 여러 음악회와 오페라가 음반과 블루레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관객들의 침실까지 찾아간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더 많은 관객을 확보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음악가들은 이를 반가워하지만은 않았다. 자신의 창작품을 최고의 조건에서 최선의 방식으로 생산하고 싶은 공연예술가들에게 첨단 기술은 오히려 불리한 환경을 제공하기도 했다. 가령 ‘녹음’이라는 기술이 산업화되자마자 경기를 일으켰던 음악가도 있었다.

루마니아 지휘자 세르주 첼리비다케는 자신의 노력을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음반 리코딩을 ‘통조림 제조’라 폄하하며 극구 거부한 음악가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1996년 사망하자 여러 공연장에서 불법으로 녹음된 실황연주들이 해적음반으로 쏟아져 나올 조짐이 보였고 유족들은 이를 막느라 애를 먹었다.

하지만 적어도 20세기 예술가들은 공연장 안에서 시시때때로 울려대는 휴대전화 벨소리와 암전 속에 객석에서 반짝이는 휴대전화 액정화면에 공연을 방해받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의 성에 안 차는 연주가 누군가의 휴대전화에 녹음이나 녹화돼 인터넷에 공개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폴란드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은 2013년 독일 루어 피아노 페스티벌에서 공연 도중 자신의 연주를 휴대전화로 녹화하는 청중 때문에 분노하여 연주를 중단하고 퇴장하기도 했다. 그는 2003년 첫 내한 때도 공연장 안에 설치된 녹음용 마이크를 치워달라고 요구하며 무대에 등장하고도 한참 동안 연주를 시작하지 않고 실랑이를 벌였던 인물이다. 예술가들이 생산하는 예술은 그들의 무형 재산이라는 점, 그러한 재산을 불법으로 녹음 및 녹화하는 행위는 남의 재산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라는 가장 기본적인 시민 의식이 하필 가장 문명화된 공간인 공연장에서 빈번하게 무시되는 상황은 정말 아이러니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지난 19일, 바로 그 지메르만의 추천으로 성사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베를린 필의 협연 무대가 펼쳐지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다시 한 번 아이러니한 풍경이 연출됐다. 라벨 피아노 협주곡 1악장이 끝나고 조용한 2악장이 시작되기 직전 1층 R석 근처에서 갑자기 오케스트라 연주를 녹음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직전까지 연주된 1악장을 누군가 휴대전화로 몰래 녹음했다가 버튼을 잘못 눌러 재생이 된 모양이었다. 그 소리가 이어진 몇 초 동안 포디엄 위에서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쓴웃음을 짓고 있었고 피아노 앞의 조성진 또한 표정이 굳었다.

이날 객석에서 유난히 빈번하게 들려오던 녹음 버튼 소리는 베를린 필과 조성진의 명성과 인기를 방증하는 것이긴 했다. 그러나 연주의 흐름을 방해하고 심지어 자신의 재산을 침해하는 일부 범법자들 앞에서, 무대 위의 음악가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노승림<문화정책학 박사·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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