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하 30주기’ 갈수록 커지는 그리움

30년 전 세상을 떠난 유재하는 천부적인 감성으로 가요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뮤지션이었다. 유재하장학재단
 
지난 10일부터 서울 성동구 한양대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유재하 추모전을 촬영한 것이다. 한 시민이 전시장에서 고인과 관련된 영상을 보고 있다. 뉴시스


가요계 안팎 추모 물결

‘유재하 30년, 우리 이대로 영원히’
후배들, 내달 그를 기리는 앨범 내
모교 한양대에선 추모전 한창

스물다섯 해 짧은 삶이었지만
가요사에 영원한 자취 남겨



1987년 11월 1일, 스물다섯 살 청년이 세상을 떠났다. 교통사고였다. 인터넷에서 그 시절 신문을 검색하면, 청년이 죽은 이듬해 한 일간지에 실린 이런 내용의 기사를 만날 수 있다.

당시 청년은 술에 취한 친구가 모는 승용차에 탔다가 변을 당했다. 차량은 중앙선을 침범해 마주 오던 택시와 정면충돌했다. 청년은 목숨을 잃었다. 청년의 아버지는 운전자 가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음주운전을 하다가 친구를 사망케 했으므로 작곡가이자 가수인 청년의 활동기간을 55세까지로 계산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청년의 이름은 싱어송라이터 유재하. 2017년은 그의 30주기이면서 유재하가 살아있다면 55세가 되는 해다. 과거 법원은 그가 55세까지 활동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고인의 재능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평생 활동하며 주옥같은 노래를 내놨을 거라고 확신할 것이다.

최근 가요계 안팎에서는 유재하의 30주기를 추모하는 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다음 달 발매될 추모 음반이다. 음반 제목은 ‘유재하 30년, 우리 이대로 영원히’. 앨범에는 총 11곡이 실린다. 김조한 수지 이진아 지소울 등이 고인이 남긴 노래를 다시 불렀다. 프로듀싱은 작곡가 김형석이 맡았다. 유재하장학재단은 “아름다운 음악과 마음이 모인 앨범”이라며 “많은 분들이 이 음반을 통해 (고인을) 추억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유재하의 모교인 한양대에서는 지난 10일부터 추모전이 한창이다. 그가 생전에 수집한 LP나 사용하던 피아노 기타 등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행사는 내년 6월 30일까지 열린다.

유재하의 30주기를 추모하는 열기가 뜨거운 것은 그가 가요사에 남긴 영향력이 그만큼 대단해서다. 경북 안동 출신인 유재하는 1981년 한양대 음대에 진학했다. 데뷔작이자 유작이 된 음반 ‘사랑하기 때문에’를 취입한 건 87년. 앨범명과 동명의 노래를 포함해 ‘가리워진 길’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등은 30년이 흐른 지금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유재하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89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 유재하음악경연대회다. 지금 가요계를 주름잡는 수많은 뮤지션이 이 대회를 통해 음악인으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1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조규찬을 비롯해 유희열 이한철 루시드폴 정지찬 등이 이 대회 출신이다. 그룹 방탄소년단을 만든 프로듀서 방시혁 역시 마찬가지다.

소승근 대중음악평론가는 케이블채널 Mnet이 가요사를 갈무리해 2011년 펴낸 ‘레전드 100 아티스트’에 이렇게 적었다. “유재하는 1987년 11월 1일에 짧은 일생을 마쳤지만 대한민국의 대중음악은 그날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실제로 유재하는 한국 발라드의 문법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련되고 서정적인 멜로디는 지금 들어도 명불허전이다.

듀오 ‘빛과 소금’ 멤버로 80년대 큰 인기를 모았고, 유재하와 친분도 있었던 장기호 서울예대 교수는 23일 본보와 통화에서 “유재하는 가요의 수준을 끌어올린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유재하는 팝과 가요의 차이를 고민하곤 했다. 가요의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분석하는 능력이 있었다”며 “이런 고민이 가요의 새로운 물꼬를 튼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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