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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마지막 인종청소, 최후까지 단죄받다

스레브레니차 학살 사건으로 집단매장된 희생자들을 발굴하는 1996년 사진. 보스니아 내전 중인 95년 7월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스레브레니차에서 보스니아 무슬림 성인 남자와 소년 8000여명을 무참하게 학살했다. 발굴된 유해 1000구는 아직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AP뉴시스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민병대 사령관 라트코 믈라비치가 2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의 유엔 산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법정에서 판결문 낭독 중인 재판관에게 고함을 지른 뒤 퇴장당하고 있다(왼쪽). 믈라디치가 ‘제노사이드(집단 대학살)’ 유죄 판결과 함께 유엔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을 선고받았다는 뉴스가 나오자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학살 추모센터에 모였던 보스니아 여성들이 기뻐하고 있다. AP뉴시스




‘발칸의 도살자’ 믈라디치 종신형

세르비아민병대, 보스니아 내전 중
무슬림 남성·소년 8000여명 몰살
‘스레브레니차 학살’ 주도한 혐의
사령관 믈라디치 16년 도피 생활
2011년 체포 유고전범재판소 회부

옛 유고연방 내전 당시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마을에서 8000여명의 무슬림을 집단학살한 라트코 믈라디치(75) 전 세르비아계 민병대 사령관이 기소된 지 22년 만에 마침내 국제사회의 단죄를 받게 됐다.

유엔 산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는 2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법정에서 보스니아 내전 당시 대량학살과 인종청소 등 11개 혐의를 받는 믈라디치에 대해 ‘제노사이드(집단 대학살)’ 유죄 판결과 함께 유엔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을 선고했다. 믈라디치는 판결문 낭독 중인 재판관에게 고함을 질러 법정에서 퇴장 당했다.

ICTY는 지난해 믈라디치와 함께 나란히 ‘발칸의 도살자’로 불리는 라도반 카라지치(72) 전 세르비아계 수반에 대해서는 40년형을 선고했다. 당시 보스니아인들은 카라지치에게 제노사이드 유죄 판결 및 종신형 선고가 되지 않자 법정을 비난했었다. 카라지치는 항소한 상태다.

스레브레니차 학살 사건은 2차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최악의 잔혹 행위로 꼽힌다. 보스니아 내전 중인 1995년 7월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유엔이 안전지역으로 선포한 피난민 주거지인 스레브레니차에 난입, 보스니아 무슬림 성인 남자와 소년 8000여명을 무참하게 학살했다. 이 사건은 92∼95년 벌어진 보스니아 내전 가운데 유엔 국제사법재판소가 대량 학살로 정의내린 유일한 사건이기도 하다. 보스니아는 내전이 끝난 뒤 스레브레니차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유골을 발굴하고 희생자를 확인하는 작업을 벌여왔지만 아직도 1000여명은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세르비아는 89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 취임 후 여러 민족이 혼재한 옛 유고연방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촉발시켜 내전을 주도했다. 45년 발칸반도에 수립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유고연방)은 92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6개 공화국과 세르비아 내 보이보디나와 코소보의 2개 자치주로 분리됐다.

93년 설립된 ICTY는 그동안 160여명의 전범을 기소해 약 40명의 유죄판결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카라지치, 믈라디치와 함께 유고 내전의 3대 전범 중 한 명인 밀로셰비치에 대한 재판을 6년이나 끄는 바람에 처벌 기회를 놓쳐 비판받은 바 있다. 2000년 체포돼 헤이그 구치소에 수감됐던 밀로셰비치는 2006년 심장마비로 자연사했다.

믈라디치는 95년 ICTY 기소 이후 도피생활을 하다 2011년 16년 만에 세르비아 당국에 체포됐다. 세르비아군의 비호 아래 도피생활을 했던 그는 세르비아가 유럽연합(EU) 가입을 목표로 하면서 체포됐다. EU는 그동안 그의 체포를 세르비아의 EU 가입 조건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검찰은 지난해 믈라디치에게 종신형을 구형하면서 “믈라디치에게 종신형보다 가벼운 형량을 내리는 것은 이미 죽은 희생자와 살아있는 희생자들에 대한 모욕이자 정의에 대한 무례”라고 강조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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