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엔터스포츠] 허~ 제가 올림픽 도전합니다… ‘농구대통령’ 허재의 야망


 
한국 남자 농구 대표팀 허재 감독이 지난 16일 충북 진천군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상무와의 연습 경기 도중 선수들에게 전술을 설명하고 있다. 진천=서영희 기자
 
16일 경기에서 대표팀 센터 김종규가 호쾌한 덩크슛을 성공시키는 모습. 진천=서영희 기자


2020년 도쿄올림픽 겨냥 대표팀 지휘봉
올 아시안컵서 조직력 앞세워 3위 올라
23일부터 농구월드컵 지역예선 개막
중국 등과 겨루며 올림픽 여정 시작


“디펜스는 정확하게 하고 오펜스는 맞춰가는 과정이다. 패턴대로 하자.”

국제농구연맹(FIBA) 농구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예선을 앞두고 소집훈련에 들어간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은 지난 16일 충북 진천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스텝을 밟고 있었다. 농구대통령 허재(52) 감독은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때로는 고함을 치고, 때로는 박수를 보냈다.

카리스마 넘치는 감독이자 한국농구 레전드의 말에 선수들은 말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아들뻘 혹은 조카뻘 선수들을 지도하는 허 감독은 비록 짧은 훈련기간이었지만 조바심을 내기보다 선수들을 다독이고 손발을 맞추는 데 많은 신경을 썼다.

허 감독의 눈빛 속에는 무언가 갈망하는 기운이 가득했다. 바로 농구 대표팀의 올림픽 진출이었다. 선수로서 이룰 것은 다 이뤘지만 유일하게 허전했던 부분이 바로 대표팀에서의 성적이었다.

1985년 아시아선수권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른 허 감독은 99년 후쿠오카 아시아선수권까지 14년간 태극마크를 달았다. 용병도 없던 시절, 그는 88 서울올림픽과 90년대 초 세계선수권(현 농구월드컵)에서 탈아시아급 기량을 선보였다. 90년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대회 때 이집트전에서 무려 62득점을 기록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는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역대 농구월드컵 한 경기 개인 최다득점 기록이다.

그러나 허재 개인이 아닌 대표팀 성적은 좋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손쉽게 우승을 차지했지만 아시아선수권과 아시안게임 등에서는 단 한 번도 정상에 서지 못했다. 96 애틀랜타올림픽은 허재가 마지막으로 뛴 올림픽 무대였다. 그리고 이는 현재까지 우리나라 대표팀의 마지막 올림픽 진출사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허재의 전성기가 끝날 때쯤부터 한국농구의 암흑기가 찾아온 셈이다. 2002년·2014년 아시안게임에서의 1위는 홈코트 이점이 반영된 것이어서 농구 부흥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허 감독은 자신의 퇴장 이후 사라진 올림픽 진출사를 자신의 팀을 통해 다시 쓰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꿈은 조금씩 무르익고 있다.

‘허재호’에 대한 농구팬의 기대가 커진 것은 지난 8월 레바논에서 열린 2017 FIBA 아시아컵 때문이다. 이 대회에서 뛰어난 팀워크로 호주, 이란 등 강자에 이어 3위로 마치며 2014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진행된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의 대표팀 경기와 다른 짜임새 있는 조직력을 선보였다고 농구계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허 감독은 “올림픽 진출이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면서도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고 선수들의 의욕도 충만해 현재 올림픽 진출 가능성은 70% 정도로 올라왔다”고 조심스럽지만 자신감을 내비쳤다. 농구 천재인 허 감독이 후배이자 대표팀 선수들에게 바라는 것은 뭘까. 바로 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다. 허 감독은 “선수들이 목표의식을 가지고 지금보다 더 뛰어야 한다. 마치 발에 땀이 나도록”이라고 강조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외곽플레이 위주 전술을 펼치는데 빅맨인 이종현, 김종규 등이 더 성장해줘야 한국 농구가 나아갈 수 있다”고 주문했다.

허 감독은 선수 시절 부산 기아엔터프라이즈 소속으로 프로농구(KBL) 1997-98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부상 투혼을 발휘, 팀이 준우승을 했지만 최우수선수(MVP)의 영광을 안았다. 당시의 열정을 후배들이 이어받길 원하느냐고 질문하자 웃기만 했다. 자칫 선수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래도 대표팀 체질 개선은 나름 잘 되고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농구팬들의 비원이 된 올림픽 진출이라는 목표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건 당연하다. 올림픽에 진출을 해야 한국 농구 인기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그의 눈은 이 말을 할 때 가장 빛났다.

한국 농구 국가대표팀은 23일 뉴질랜드전을 시작으로 2019 농구월드컵(중국)을 향한 여정에 들어갔다. 이번 농구월드컵은 2020년 도쿄올림픽 출전 티켓이 걸려 있다. 아시아컵에 이어 강호 뉴질랜드를 또다시 86대 80으로 꺾는 쾌거를 이뤄 농구 대표팀의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이번 예선에서 뉴질랜드, 중국, 홍콩과 1라운드 조를 이룬 우리 대표팀은 3위 이상에 올라야 2라운드에 진출한다. 이후 2라운드를 넘어 농구월드컵 본선에서 아시아 팀 중 1위를 해야 도쿄올림픽 직행 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 바늘구멍 같은 험난한 길이지만 농구팬들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바로 꿈을 이룰 허 감독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진천=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사진=서영희 기자,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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