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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재선거로 위기 돌파하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가 20일(현지시간)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연정 협상 결렬 문제를 논의한 뒤 베를린의 벨뷰궁(대통령 관저)을 함께 나서고 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제 정당들에 추가 협상을 주문했다. AP뉴시스




“소수내각보다는 재선거”
대통령→의회 찬성 얻어야
정치생명 건 승부수 될 듯
유럽은 구심점 잃을까 걱정
극우세력 확산될 우려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하면서 집권 12년 만에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리더십에 빨간불이 켜지며 ‘포스트 메르켈 시대’가 왔다는 전망과 백전노장답게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는 기대가 공존하고 있다.

메르켈은 20일(현지시간) 공영방송 ARD에 출연해 “(전체 의석수의 과반에 못 미치는) 소수정부를 구성하는 것에 회의적”이라며 “재선거가 더 나은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독일은 안정이 필요하다”며 연정 협상 실패에 따른 총리직 사임 가능성은 일축했다.

그가 이끄는 중도우파 기민·기사(CDU·CSU) 연합은 지난 9월 말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해 그동안 좌파정당인 녹색당, 친기업 성향인 자유민주당(FDP)과 연립정부 구성 협상을 벌여왔다. 이번 총선 전까지 연정 파트너였던 제1야당 사민당은 연정을 거부하고 야당으로 남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연정 협상 테이블에는 난민과 에너지, 조세 및 재정 등 12개 주요 의제가 놓였었다. 자유민주당이 19일 에너지와 난민 문제에서 뜻을 같이할 수 없다며 협상 결렬을 선언하면서 메르켈은 소수정부 구성 또는 재선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소수정부를 꾸릴 경우 당장은 혼란을 잠재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사사건건 야당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재선거는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 리스크가 크지만 성공할 경우 강력한 기반 위에서 네 번째 임기를 시작할 수 있다.

재선거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선 대통령이 총리 후보를 제안한 뒤 연방의회에서 과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어 새 총리가 연방의회 해산을 선언한 뒤 60일 내에 재선거를 치르게 된다. 따라서 메르켈이 이 관문을 통과해 새 총리가 된다는 보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후 실시될 재선거 결과 역시 장담할 수 없다. 자칫 12년간 독일을 넘어 유럽의 리더로 군림해 온 메르켈의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

다만 현지 여론조사에서는 메르켈에 대한 지지율이 여전히 높다. ARD 조사에 따르면 메르켈이 다시 총리직을 맡는 것에 58%가 긍정적이라고 답변했다. 또 연정 협상 결렬 책임에 대해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당을 지목한 비율은 9%로 가장 낮았다. 대신 자민당(32%), 기사당(18%), 녹색당(15%) 순으로 책임이 크다고 답했다.

유럽 주변국에서도 메르켈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가 독일의 안정된 정치경제 여건을 기반으로 대규모 난민유입 문제 및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 위기 등을 앞장서 해결했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정치 위기로 메르켈의 퇴진이 가시화되는 사태가 발생하면 유럽이 그동안 함께 추진하던 통합 프로젝트들이 표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난민 수용에서 볼 수 있듯 메르켈은 진보적인 국제질서의 대변자였다. 난민 문제 때문에 지지율이 내려가는 바람에 이번 위기를 맞게 됐지만 그가 물러날 경우 극우세력이 활개 치게 되면서 유럽대륙 정치판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메르켈의 위기가 유럽 또는 세계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메르켈은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면 우리는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메르켈과 독일, 그리고 유럽과 세계의 운명이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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