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조각과 벽화의 행복한 만남

박영남, ‘Segal’s Garden’. 벽화. 2017. 장흥 가나아트파크


경기도 장흥에서 작업하는 화가 박영남(68)은 인근의 가족미술관 가나아트파크를 즐겨 찾는다. 부르델, 세자르, 스텔라 등 유명 작가의 조각과 회화가 있는 데다, 머리 식히기에 제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조지 시걸(1924∼2000)의 조각이 썰렁한 장소에 방치되듯 놓여있는 게 못마땅했다. ‘우연한 만남’이란 시걸의 청동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뉴욕 화이트칼라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포착한 수작이다. 약속이나 한 듯 버버리코트를 떨쳐입은 3명의 뉴요커들은 ‘One way’라 쓰인 도로표지판 아래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인체를 실물 크기로 캐스팅한 후, 브론즈로 뜬 이 조각은 현실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구조물을 곁들여 ‘환경적 오브제’로 완결성을 더했다. 인물들의 건조한 표정, 잿빛 질감은 대도시 구성원들의 팍팍한 삶의 무게를 잘 보여준다. 대단히 현실적인 조각이지만 비현실적 아우라도 전해진다.

그 역시 젊은 날 뉴욕에서 수학했기에 이 조각에 애착이 깊었던 박영남은 작품을 위해 최근 벽화작업을 했다. 3면의 벽에 대비되는 색을 입히고, 그림자를 곳곳에 정성껏 그려 넣었다. 붉은 벽면 한편에는 쉼표도 새겨 넣었다. 그 결과 시걸의 작품은 아늑한 공간에서 빛을 발하게 됐다. 작품료도 사양한 채 거장의 조각에 바치는 ‘오마주적 프로젝트’를 마친 작가는 “많은 이들이 멋진 작품과 더 깊이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꺼이 조연을 자처한 작가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이영란(미술칼럼니스트)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