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20년] 국민들, 돌반지로 대한민국 신인도를 지키다

20년 전 외환위기 때 국민들은 ‘금 모으기운동’을 통해 위기 극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사진은 1997년 말 금 모으기운동을 벌이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 새마을지회 회원들 모습. 국민일보DB




트럼프도 극찬한 캠페인… 다시보는 ‘금 모으기 운동’

금붙이 들고 늘어선 줄 ‘생생’
5개월간 정부 추산 227t 수집
위기극복 의지 전세계에 알려


‘금 모으기운동’은 20년 전 한국을 덮친 외환위기 극복의 상징 중 하나다. 너도나도 집에 보관하고 있던 금붙이를 들고 나오던 장면은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한국의 의지를 만천하에 공표한 장면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일 국회 연설에서 “여러분은 반지와 행운의 열쇠를 내며 미래를 담보하고자 했다”며 금 모으기운동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경제가 어디까지 무너질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안전자산인 금을 내놨다는 점에서 금 모으기운동은 일정 부분 국민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다만 그 희생은 금 모으기운동에 참여한 국민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이득을 안겨준 측면도 있다. 비록 정치적 이유가 더 강했지만 정부와 대기업,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지원·참여도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됐다.

금 모으기운동은 1997년 12월 시작됐다. 애초 운동은 새마을부녀회 등 민간 중심의 일회성 행사에 가까웠다. 운동은 이듬해 1월 KBS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사들이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은행이 금 매입을 맡고, ㈜대우 등 상사들은 수출 업무를 맡았다. 4월을 끝으로 종료된 금 모으기운동에 국민들이 맡긴 금의 양은 227t에 달하는 것으로 기획재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금 시세를 고려하면 약 22억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외환위기를 극복할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200억 달러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무시할 수준의 금액도 아니었다.

‘일단 나라부터 살리고 보자’는 심정으로 국민들은 운동에 참여했지만 경제적으로 마냥 불합리했던 선택은 아니었다. 국민들은 금 모으기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시세보다 후한 값에 금을 팔 수 있었다. 당시 시세는 금 한 돈에 약 4만원이었다. 시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금 모으기운동에 참여한 국민들은 돈당 약 5만8000원을 보상받았다.

금을 그저 보유하는 것보다 판매한 뒤 현금을 은행에 맡기는 편이 더 유리한 측면도 있었다. 은행의 저축 이자가 연 20%에 육박하던 시절이었다.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금값의 가치는 조금씩 하락하는 추세였다. 97년 10월 온스당 324.87달러(런던금시장연합회 기준)였던 금값은 98년 초 300달러 안팎으로 하락했다. 실직과 실질임금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일부 가구들도 급전 마련을 위해 금 모으기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반면 환란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정부와 대기업, 금융권은 각자 조금씩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금모으기운동을 지원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따가운 비판을 피하고자 했다.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금 모으기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위기 수습에 동참하고 있다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했다.

언론사와 함께 운동을 주도했던 금융권은 금 모으기운동을 저축상품과 연계하고 나섰다. 금 모으기운동에 참여한 국민이 보상받은 돈을 바로 은행에 예치하면 연 0.5∼1% 금리를 우대해 주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려는 은행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정부도 숟가락을 얹었다. 금이 헐값으로 수출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재정경제부(현 기재부)는 한국은행이 모인 금의 일부를 매입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부유층의 참여를 독려한다는 명분으로 ‘비실명·무기명’ 정책을 실시하기도 했다. 대기업도 민간의 움직임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삼성그룹 임원진은 금 모으기운동 초창기에 12㎏의 금을 기탁했다. 다른 대기업들도 제각기 사내 금 모으기운동을 전개하는 등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주훈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0일 “금 모으기운동은 단순한 외화벌이 수단이 아니라 국민들의 위기극복 의지를 세계 모든 국가에 알렸다는 점에서 더 의미 있는 운동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운동 전개 과정에서 정부나 대기업 등의 정치적 고려가 개입된 측면도 있었지만 국민들이 스스로 국가 신인도를 끌어올렸다는 운동의 본질을 훼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