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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초승달 벨트’ 뜨니… 사우디·이스라엘 ‘적과의 동침’

칼리드 빈아흐메드 알칼리파 바레인 외무장관(앞줄 왼쪽)이 19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아랍연맹 총회에서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이란을 비판하고 있다. 회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요청으로 소집됐다. AP뉴시스




反이란동맹의 부상

이란, IS와의 전쟁 최대 수혜자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는 위기감
美 중재로 이스라엘에 손 내밀어
유대인 사위 쿠슈너가 핵심 역할
이슬람권 국가들 반발 변수될 듯

중동에서 맹위를 떨치던 수니파 이슬람국가(IS)가 궤멸됐지만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결이 거세지고 있다.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는 빠르게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시아파 맹주 이란에 대적하기 위해 우방인 미국은 물론 숙적인 이스라엘까지 포함한 삼각동맹 구축에 나섰다.

최근 중동 언론은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대이란 공동전선’을 고리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잇따라 보도했다. 가디 아이젠코트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사우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이란에 대적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동맹’을 통해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스라엘은 사우디와 이란 관련 정보를 기꺼이 공유할 수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한 발 더 나아가 이슬람-유대교의 종교적 화해도 언급했다. 아유브 카라 이스라엘 통신장관은 지난 13일 사우디의 종교 지도자 카비르 무프티 압둘아지즈 알셰이크를 이스라엘로 초청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동맹을 구축하는 것에 대해 현재까지 공식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9월 사우디 실세인 빈 살만 왕세자가 이스라엘을 비밀리에 방문했다는 AFP통신 보도가 나온 이후 두 나라의 협력설은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양국 모두 친미 국가로 미국이 둘의 연계를 독려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뉴욕타임스는 지난 12일 ‘미국의 새 중동 평화안’ 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위이자 유대인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양국을 연결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지난 18일 워싱턴DC의 팔레스타인 사무소 폐쇄를 거론하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을 시작하도록 압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중동에서 이슬람국이 이스라엘과 손잡는다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임에도 불구하고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가까워지려는 것은 이란 관련 세력이 워낙 강성해졌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10일 중동의 현 상황을 분석하면서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동맹인 ‘시아파 초승달 벨트’가 거의 완성됐다고 소개했다.

초승달 벨트는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가 2004년 “이라크전의 승자는 이란”이라고 경고하면서 쓴 표현으로, 이번 IS 붕괴로 벨트가 더욱 확연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디가 미국 주도 국제동맹군에 가담해 소극적인 지원에 그친 데 비해 이란은 혁명수비대를 중심으로 IS 격퇴전에서 큰 역할을 했다. 이에 따라 이란의 군사적 영향력이 초승달 벨트에 뿌리내린 상황이다. 최근에는 걸프 해역을 건너 시아파 인구가 많은 바레인과 시아파 반군 후티가 장악한 예멘 북부까지 세가 확산됐다.

조급해진 사우디는 다른 수니파 국가를 규합해 예멘 내전에 지상군까지 동원해 개입하는가 하면 이란과 가깝게 지내던 카타르를 단교로 고립시켰다. 수니파인 사드 알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지난 4일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암살 위협을 이유로 사임을 전격 발표한 것도 최근 사우디의 이런 움직임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손잡으려면 이슬람권의 동의가 필요하다. 종교적으로 적(敵)인 유대국가와 협력할 경우 자칫 수니파 맹주 자리마저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벌써부터 사우디를 ‘이슬람권의 배신자’로 부르며 자신들의 순수성을 과시하고 있다. 사우디로서는 내상이 따르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 셈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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