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의 아이돌 열전] ④ 레드벨벳, 귀여움 그 이상의 재능을 지닌 아티스트


 
걸그룹 레드벨벳의 2집 정규앨범 ‘퍼펙트 벨벳(Perfect Velvet)’의 재킷 사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아이린 조이 웬디 예리 슬기. SM엔터테인먼트 제공


걸그룹 레드벨벳이 지난 17일 2집 정규앨범 ‘퍼펙트 벨벳(Perfect Velvet)’을 발매했다. 타이틀곡 ‘피카부’는 무거운 드럼이 공격적으로 몰아붙이며 만들어내는 그루브와 어두우면서도 활기가 있는 멜로디가 조합된 곡이다. 호러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뮤직비디오도 화제다. 앨범 수록곡 역시 다채롭고 탄탄하다. ‘봐’ ‘아이 저스트(I Just)’ 등 고혹적인 향취가 있는 일렉트로닉 팝이 있는가 하면, ‘퍼펙트 텐(Perfect 10)’ ‘킹덤 컴(Kingdom Come)’ 등 몽롱한 공간을 우아하게 타고 흐르는 알앤비(R&B)도 있다. 대체로 유려한 멜로디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석적인 악기와 주법이 깊이 있게 펼쳐진다. 그래서 종종 등장하는 특이하거나 낯선 사운드도 음악을 어렵게 하기보다 흥미롭게 한다.

어쩌면 레드벨벳은 음악 좀 들었다는 성인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90년대 R&B를 중심으로 디스코와 일렉트로닉 팝을 배치했다. 연주와 보컬에는 재즈 화성이 화려하게 사용된다. 때로 B급 고전 영화들의 레퍼런스, 수수께끼 같은 시각 이미지를 사용한 것은 다분히 클래식한 마니아 취향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니아 세대가 과거 영미권 음악에서 동경하던 것이다.

앨범의 구성도 그렇다. 이들은 데뷔 초부터 ‘레드’와 ‘벨벳’ 콘셉트로 나눠서 활동한다고 선언했다. 각 콘셉트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꾸준히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단순히 ‘댄스’와 ‘발라드’ 구분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콘셉트에 따라 분산된 것은 각 음반의 정서적 기조였다. 쾌활한 ‘레드’와 가라앉은 ‘벨벳’. 그런 일관성 있는 수록곡 구성이 더욱 호평 받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를 갈무리하는 것은 결국 음악 제작 기술의 발전이다. 여러 명의 창작력을 쏟아 부어 놓고 최고의 것을 뽑아 올리는 ‘송캠프’ 등 작곡 시스템, 그리고 지난 10년간 비약적으로 높아진 사운드의 완성도이다. 마니아들에게 레드벨벳의 음악은 ‘이제는 우리도 이런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신호처럼 다가간다. 레드벨벳이 남겨두는 조금 알쏭달쏭한 구석들은, 팝송을 들으며 전부 이해하지는 못해도 ‘거의 알 듯한’ 감각에 접근하게 한다.

쾌활한 업템포에 엉뚱하고 유머러스한 가사와 연출을 더하는 레드벨벳은 분명 귀여움을 내세운다. 가사에도 자신을 귀엽다고 언급하는 대목이 왕왕 있다. 그러나 다른 걸그룹과는 그 결이 조금 다르다. 이들은 애교를 부리지 않고도 귀여움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걸그룹이 가장 귀여워질 법한 순간에 레드벨벳은 듣는 이를 향해 손을 뻗기보다 장벽을 세운다. 데뷔곡 ‘행복’에서도 그저 멤버들끼리 즐거운 모습을 전시할 뿐이고, ‘피카부’와 ‘러시안 룰렛(Russian Roulette)’은 멤버들끼리 살벌한 게임을 벌이는 뮤직비디오를 선보인다. 멤버들은 웃지 않는 무표정을 제법 많이 노출한다. 자신이 귀엽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으로 상대의 마음을 사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이들은 재능과 매력을 가진 아티스트이고,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점점 팬에게 가깝게 다가가려 하는 요즘의 아이돌, 특히 걸그룹 시류와는 조금 어긋난다. 그러니 레드벨벳의 태도가 보수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이돌의 지위가 점점 낮아지는 걸 볼 때면 생각해보게 된다. 레드벨벳이 듣는 이와 거리두기를 통해 퍼포머로서 자존을 지켜내는 것이라면? 그런 선택을 단지 구식이라 부를 수 있을까?

미묘<대중음악평론가·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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