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겨울나기용 김치를 담그는 김장



어릴 적 김장하는 날은 거의 잔칫날이었던 것입니다. 숨 죽은 배추 백여 통이 반으로 짝 쪼개져 채반에 푸짐히 누워 있고, 그때쯤 엄마가 빨간 양념 발린 배춧잎에 삶은 돼지고기 한 점 돌돌 말아 입에 쏙쏙 넣어주셨습니다. 어린 입에 매워서 자꾸 물을 먹어대는 바람에 배가 빵빵해지기도 했지요.

‘김장’은 겨우내 먹기 위해 입동 전후, 그러니까 이맘때 김치를 한꺼번에 많이 담그는 것, 또는 그렇게 담근 김치를 말합니다. 김장은 침장(沈藏)에서 온 말로 알려져 있지요. 沈은 뭔가를 물에 담근다는 뜻으로 김치 만드는 것을 ‘담다’가 아니라 ‘담그다’라고 해 온 이유입니다. 김치는 침채(沈菜)에서 연유한 말인데, 김장의 ‘김’이나 김치의 ‘김’이 한 뿌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김치의 ‘치’는 채소를 이르는 ‘채’가 변한 것이고, 김장의 藏은 저장해 둔다는 의미입니다. 김장은 ‘담가서 저장한다’는 뜻이겠습니다.

김장을 진장(陳藏)이라고도 했는데, 陳은 ‘오래되다’ ‘묵히다’의 의미도 가진 글자입니다. ‘새로’ 섭취한 것을 에너지로 쓴 뒤 ‘묵은’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낸다는 뜻의 신진대사(新陳代謝)에도 들어 있지요.

천지가 눈으로 덮인 아침이면 수수비로 쓸어 김칫독 가는 길을 내는 게 눈곱 떼어 가며 하던 일이었는데, 그때 그 김장독 그 김치가 그립습니다.

글=서완식 어문팀장,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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