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오 ‘톰보이’ 뮤비에 담긴 뜻은… 제작자 박광수 인터뷰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두산갤러리에서 포즈를 취한 박광수 작가.
 
혁오의 ‘톰보이’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불 사람’. ‘불 사람’ 원화는 금호미술관의 기획전 ‘B컷 드로잉’에서 만나볼 수 있다.


노상호 작가의 소개로 혁오와 인연
4분 애니메이션 위해 4000장 그려
흑백 드로잉 회화의 독창성 돋보여


MBC 인기 예능 ‘무한도전’에 출연하며 이젠 인디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해진 밴드 ‘혁오’. 지난 4월 발매한 정규앨범 ‘23’에 수록된 ‘톰보이(TOMBOY)’ 뮤직비디오에는 걸어가는 사람의 형상이 고흐의 붓질처럼 일렁이는 검은 선으로 피어올랐다 사라진다. 일명 ‘불 사람’ 애니메이션이다.

불 사람을 제작한 주인공은 촉망받는 젊은 작가 박광수(33). 서울 종로구 두산갤러리에서 개인전 ‘부스러진’을 갖고 있는 작가를 지난 10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사라지고 소멸해가는 상태에 대한 은유지요. 정열조차도 에너지가 상승하는 것이라기 보단 소진되어가는 것 같은….” 그는 “혁오로부터 ‘이별 노래’를 받고 어떻게 할까 많이 고민했다. 남녀의 이별보다는 현상들과의 이별로 폭넓게 이야기 하고 싶었다”면서 “연기로 의인화된 존재가 떠나가고, 불은 그 연기를 그리워하는 식의 설정”이라고 설명했다.

타올랐다 사라지는 생의 비의(悲意). 불 사람이 주는 그런 이미지는 밴드 보컬 오혁의 쓸쓸하고도 허스키한 목소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혁오에 그를 소개한 이는 비슷한 연배의 노상호(31) 작가다. 흑백 회화를 해오던 박 작가가 재미 삼아 선보인 동영상을 눈여겨보고 추천했다. 혁오는 대중적이지 않은 느낌을 내고 싶어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고자 했다. 일종의 모험이지만 결과에 대만족했다고.

통상 10초짜리(200장) 분량을 했으나 이번엔 무려 4분이다. “4000여장을 그리느라 정말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며 웃었다. 그는 “순수영역을 고집해야 된다는 생각은 없었다. 좋은 거와 나쁜 게 있지, 예술적인 것과 대중적인 게 나뉠 수 있냐”고 반문했다.

서울과기대 조형예술과를 졸업한 박 작가는 2016년 ‘금호미술관 영 아티스트’에 선정됐고 종근당 예술지상을 받았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붓질이 꿈틀대는 흑백의 드로잉 회화로 독창적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손수 제작한 ‘스펀지 펜’을 사용해 검은 터치의 선으로만 완성한 흑백의 풍경. 누군가 숲 속으로 사라지는 듯 모호한 풍경이다. 그는 “시간이 가는 것 자체도 사라짐으로 가는 게 아닐까. 누군가 사라지는 걸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나온 것”이라고 했다. 피 끓는 청춘의 입에선 나오기 힘든 인생 해석이다. 어머니가 수년 전 세상을 떠났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환기됐다. 가슴이 먹먹해지는데 그가 말했다. “거기에서 이젠 벗어나고 싶다”고.

그래서인가. 이번 개인전에서도 여전히 흑백 회화인데 농도를 옅게 해 환해진 신작들이 나왔다. 검은색이라기보단 맑은 회색의 느낌이다. 꿈틀거리는 검은 숲의 곡선이 아니라 환한 도시 속의 직선이다. 그 가운데 소녀의 형상이 커다랗게 떠 있다. 누굴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관람객의 마음에 떠오르는 누구이면 되니까.

글·사진=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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