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유쾌한 픽셀 탐험

황규태 ‘픽셀-Reverse 2017’ 피그먼트 프린트, gallery Lux


한국 사진계에서 황규태(79)는 매우 독특한 작가다. 대학 졸업 후 신문사 사진기자로 출발했지만 작가로 데뷔한 뒤 실험적 사진예술의 선봉에 서왔다. 모두가 완벽한 사진을 추구하던 1970년대황규태는 필름을 태우거나 타인의 사진을 패러디하며 기존 문법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90년대에는 TV나 컴퓨터 모니터를 초근접 촬영한다든지 물 표면에 투영된 빛을 찍으며 “한 알의 모래알에서 우주를 본다”는 말을 되뇌었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이미지들을 합성해 초현실적 사진을 만들어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렇듯 40여 년간 ‘변혁과 도발’을 통해 사진의 지평을 넓혔던 황규태가 요즘 빠져있는 것은 ‘픽셀 탐험’이다. 컴퓨터 속 사진이미지를 디지털 화소(pixel)로 전환한 뒤, 배합해 경쾌한 색의 패턴으로 만들고 있다.

그가 이번 ‘황규태 개인전-pixel’에 내놓은 작품들은 화려한 색면들이 퍼레이드하듯 군집을 이루고 있다. 비정형의 색면들을 데칼코마니 기법처럼 양면으로 펼친 ‘Reverse’에선 디지털 세계의 매트릭스가 펼쳐진다.

황규태의 신작은 디지털 증식의 결과물이니 사진이라 보기 어렵다. 그러나 사진 인화지에 인화한 것이니 사진이기도 하다. 기존 사진에 끝없이 이의를 제기해온 그다운 시도다. “픽셀과 실컷 놀았을 뿐”이라지만 우리 앞의 보이는 것들을 비틀어 전혀 다른 맥락으로 구현한 시도는 분명 새롭다. 팔순이 눈앞인 황규태는 이렇게 누구보다 ‘젊은 작업’을 하고 있다.

이영란(미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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