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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30초에 한 글자… 눈으로 쓴 글



‘안구 마우스(EyeWriter)’란 말을 들어 보셨는지. 안구 운동으로 글씨를 쓸 수 있도록 고안된 기기다. 모니터 상에서 쓰고자 하는 자음과 모음을 바라보면서 눈을 깜빡이면 해당 자모가 입력된다. 한 글자 쓰는 데 30초 안팎이 소요된다. 이 안구 마우스로 쓴 책이다. 2011년부터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소설가 정태규(59)의 투병 기록과 자전 소설을 묶은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날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아침이었다. 출근하기 위해 와이셔츠 단추를 채우려는데 오른쪽 손가락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내를 불렀다. “여보, 단추가 안 끼워져.” 아내는 큰 눈을 반달 모양으로 뜨며 눈웃음을 지었다. 장난치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근육이 점점 마비되는 루게릭병의 초기 증상이었다.

루게릭이란 병명을 처음 듣던 날 아내는 커피잔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뚝뚝 떨군다. 욕실에서 발을 씻으려다 뒤로 고꾸라지면서 머리가 깨지기도 한다. 국어 교사로 일하던 그는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한 손으로 식판을 옮기다 바닥에 쏟는다. 옆 사람의 비명과 함께 바닥에는 멸치볶음과 김치 조각이 처참하게 흩어진다. 왼손마저 힘을 못 쓰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 하나하나 나온다. 매일매일 조금씩 나빠지는 루게릭병. 그는 이 병을 마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영화처럼 선명하게 그려낸다. 식판을 떨어뜨린 뒤 아내는 학교로 도시락을 배달한다. 그는 어느 순간 병을 받아들인다. “살아간다는 건 저마다 마음속에 감옥을 짓는 일이고 그 감옥 속에서 쉽게 죽지 않을 병을 앓으며 서서히 죽어가는 것인지도 모르지.” 이제 전신이 마비된 그는 혼자 힘으로 먹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는 생의 기쁨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내에게 안구 마우스를 통해 부탁할 때에도 “소변기 갖다 주셩”이라고 재밌는 줄임말을 쓰기도 하며 신나는 일이 있으면 “ㅋㅋㅋ”를 날린다.

그는 말한다. “당신은 모를 것이다. 카페에 앉아 잡담을 나누는 것, 아이들이 무심코 던진 공을 던져주는 것, 거실 천장의 전구를 가는 것,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 그토록 보잘것없는 순간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은 그가 환자로서 사투한 기록이자 작가로서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글들이다.

이해인 수녀는 이런 추천사를 남겼다. “그의 간절한 눈빛과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다시 일어설 용기와 감사 그리고 희망을 심어준다.”

강주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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