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출판

[책과 길] 암 투병 해직기자가 쌍둥이 아들에게 띄우는 편지



“사랑스러운 현재와 경재, 너희들이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벌써 스무 살 안팎이 되었겠구나. 나는 너희들이 10년 정도 지난 뒤에 이 글을 읽을 것이라 생각하고 쓰고 있다.”

도입부만 읽어도 코끝이 매워졌다.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는 복막암 말기 판정을 받은 중년 남성이 써내려간 자서전이면서 40대 가장이 쌍둥이 아들에게 띄우는 한 권의 편지다.

책을 쓴 사람은 2012년 MBC 파업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홍보국장을 맡아 파업을 이끌었던 이용마(48) 기자다. 이 기자는 파업이 한창이던 같은 해 3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암이 발병한 사실을 안 건 지난해 9월. 의료진은 당시 그에게 남은 시간이 12∼16개월 정도라고 내다봤다. 유서를 쓰는 심경으로 그는 이 책을 완성한 셈이다.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는 저자의 개인사에 한국의 현대사가 갈마드는 구성을 띠고 있다. 저자는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전북 전주에서 초·중·고교를 나왔다. 1987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진학했고 96년 MBC에 입사했으며 2002년 지금의 아내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어찌 보면 평범하고 순탄한 삶이었다. 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 곳곳엔 신념을 지키려고 분투한 흔적이 남아 있다. 가령 그는 지역주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자신의 본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서울로 올라와 결혼까지 했으면 본적을 옮길 수도 있는데, 자신의 본적은 여전히 남원이며 자식들 역시 남원이 본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출신지를 숨기고 도망가기 싫었다. 호남 출신임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적었다.

저자의 이력을 아는 독자라면 공영방송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책의 후반부에 눈길이 쏠릴 것이다. 그는 공영방송 사장을 국민이 뽑아야 한다고 거듭 주장한다. 국민참여재판이 그렇듯 추첨을 통해 선발된 ‘국민대리인단’에 인사권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두 아들이 진지하게 이 책을 마주할 때쯤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참고로 이 기자의 아들인 현재·경재군은 2008년생으로 세는나이로 따지면 올해 열 살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