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권력이 훼손한 예술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지휘자 성시연이 지난달 17일 독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있었던 ‘베를린 뮤직 페스티벌’에서 지휘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TFO)가 같은 달 26일 독일 함부르크 엘베 필하모닉 홀에서 공연하는 모습.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작곡가 윤이상


작곡가 윤이상(1917∼1995)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들이 그가 태어난 9월 17일부터 서거일인 11월 4일 사이에 절정을 이루고 있다. 윤이상의 생전 본거지 독일 베를린에서 9월 내내 개최된 베를린 음악 축제는 올해 윤이상 특집으로 꾸며졌다. 시내 콘서트홀에서는 윤이상의 작품들이 연주됐고 학자들은 그의 업적을 되새기는 집중 토론을 벌였으며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는 그의 음악과 기록영화들이 전파를 탔다. 이 축제에 한국 악단으로서는 유일하게 성시연 단장이 이끄는 경기 필이 초대받아 윤이상의 ‘예약’과 ‘무악’을 연주했다.

윤이상의 고향 경남 통영을 기반으로 창단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TFO)도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함부르크, 린츠 등 유럽 4개국 6개 도시를 투어했다. 특히 최근 개관한 함부르크 엘베 필하모닉 홀 공연은 한국 악단 최초의 입성이었으며 일찌감치 전석 매진될 정도로 열기가 후끈했다. TFO는 윤이상의 친구 하인츠 홀리거의 지휘로 윤이상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과 목관을 위한 ‘하모니아’를 연주하며 끊임없는 커튼콜을 받았다.

클래식 종주국 유럽에서 이룩한 이 젊은 음악가들의 성취는 윤이상의 작품이 함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국가 폭력을 피해 독일로 귀화한 이후에도 윤이상은 늘 스스로 ‘한국인’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조국은 그를 오랜 시간 거부하고 부정했다. 그가 연루된 동백림 사건은 ‘간첩죄 없는 간첩단 사건’, 즉 명백한 국가의 오류라는 법적 판결이 났음에도 희생자가 죽을 때까지 사과는커녕 명예조차 돌려받지 못했다.

동백림 사건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인권유린사건이었는지는 당시 해외 반응으로 알 수 있다. 윤이상의 무죄를 주장하며 날아든 수백 통의 해외 탄원서 중에는 스트라빈스키, 카라얀과 같은 반공주의 음악가를 비롯해 극우보수 지식인들의 이름도 다수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박정희 정부의 폭력성을 규탄하며 자국에 남한과의 외교단절까지 요구했다.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는 야만적인 국가에서 연주할 수 없다며 예정됐던 내한공연을 취소했고, 해외 여러 대학이 남한 유학생의 입학을 거부했으며 독일 학술교류처는 남한 유학생의 장학금을 중단했다. 행여나 고문으로 옥사할까 봐 유럽과 미국 음악계는 그의 옥중 작곡 활동을 허락하라고 박정희 정부를 압박했다. 서독 본 시립 오페라단이 위촉한 ‘나비의 꿈’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밀스대가 위촉한 ‘영상’은 옥중에서 완성됐다. 함부르크 예술원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윤이상을 만장일치로 아시아인 최초 종신회원으로 선출하며 남한 정권으로부터 유린당한 명예를 보상해줬다.

인터넷은커녕 해외여행도 자유롭지 않던 당시 남한 국민들은 대외적 국가망신 상황에 무지했고 ‘간첩’이라는 그의 주홍글씨를 쉽게 지워주지 않았다. 그를 옹호하는 음악가들은 늘 정치권력으로부터 견제를 당했다. 1979년 독일에서 윤이상의 작품을 지휘하고 돌아온 지휘자 고 임원식은 국가 반역자에 동조했다며 집중포화를 받았다. 94년 뜻있는 음악가들이 윤이상 음악제를 마련하며 그를 초대했지만 문민정부는 고인에게 오히려 사과를 요구하며 귀향을 좌절시켰다. 이를 계기로 윤이상은 좌우 사상을 떠나 국가 권력에 강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자신의 음악에 내재된 한국의 전통 요소를 서양 연주가들보다 훨씬 유려하게 표현하는 한국 음악가들에게만은 찬사와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진리는 시간의 딸이지 권위의 딸이 아니다’라는 라틴어 격언이 있다. ‘윤이상’이라는 진리의 등불이 한국에서 꺼지지 않은 것은 국가 권력으로부터 죽어가는 불씨를 지켜낸 후배 음악가들 덕분이었다. 때문에 언제든 등 돌릴 수 있는 무상한 국가 권력이 통영에서 옮겨다 심은 동백나무보다 자신의 음악을 가지고 세계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는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의 모습에 고인은 더욱 기뻐하리라 생각한다.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문화정책학 박사>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