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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한결같지만 다른 숨 기록하는 작가, 김숨이 들려주는 동물의 生·부부의 緣





독자들은 소설가 김숨(43·사진)이 꾸준하게 쓴다고 느낀다. 2005년 첫 소설집 ‘투견’ 이후 장편과 단편소설집을 13권이나 냈다. 편집자들은 그가 집요하게 쓴다고 말한다. 단문 속에 온갖 욕망과 폭력을 감춰두기 때문이다. 평론가들은 한결같지만 다른 숨을 기록한다고 평한다. 그는 이런 평을 업고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이번에 동시엔 낸 신작 소설집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와 ‘당신의 신’은 각각 동물의 생(生)과 부부의 연(緣)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는 동물을 테마로 한 소설 6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는 해부 실습실이 배경이다. 해부용 염소가 오길 기다리는 학생들의 초조한 대화가 드문드문 이어진다.

“염소가 왜 안 오는 거야?” “염소가 오긴 오는 거야?” “오고 있다니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실은 나도 염소가 처음이야”…. 학생들은 해부라는 행위를 당연시하면서도 같은 생명체로서 동물이라는 종에 대한 본능적 공포와 불안을 떨치지 못한다. 한 학생이 염소 해부 실습 목적을 묻는다. “그거야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는 거라고 쓰면 되지.” 누군가 이렇게 답을 한다. 이런 문답의 아이러니는 ‘멀쩡한 다른 생명의 배를 가르면서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는다?’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 머리를 헤집는다. ‘벌’은 질식하도록 꽃향기가 농밀한 산이 무대다. 화자 ‘나’는 “이 세상은 마씨와 나, 아들, 벌들, 그리고 꿀을 사리처럼 품은 꽃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나’의 삶은 벌의 생태와 교묘하게 겹쳐져 있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 길들여진 우리는 이 이야기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반성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로 보인다. 동물에 대한 소설적 명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설집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가 인간이 동물에게 저지르는 폭력을 주로 다룬다면 ‘당신의 신’은 남성이 여성에 가하는 폭력이 서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의 신’에 수록된 소설 3편 중 제일 앞에 있는 ‘이혼’. 이혼을 앞둔 아내 민정과 남편 철식을 중심으로 다양한 결혼 생활의 양태가 펼쳐진다. 민정의 아버지는 ‘쥐약 먹은 개처럼 눈에 파란 불을 켜고’ 주먹을 휘둘렀고 그때마다 그녀의 어머니는 짓이겨진 채 잘못했다고 빌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은 뒤에야 53년의 지옥 같은 결혼 생활에서 벗어났다.

사진작가인 민정의 남편은 허구한 날 집을 비웠다. 민정이 아이를 유산했을 때, 유방암 진단을 받던 날도 남편은 그녀 곁에 없었다. 민정은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사진에 담는다는 남편이 가장 가까운 자기 고통에 그토록 무감각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혼하자는 그녀에게 남편은 “한 인간의 영혼을 버리는 것”이라고 그녀를 비난한다.

민정은 결국 선언한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 이 소설집에는 이혼을 앞두고 있거나 겪은 여성들이 나온다. 작가는 상투적으로 흐를 법한 얘기를 특별한 솜씨로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가면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묻는다. 김 작가는 26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삶을 살지만 삶에는 교집합이 있다”며 “남성 중심적 사회를 살아가는 ‘나’와 우리 어머니들의 고통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을의 사색을 깊게 해줄 소설집들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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