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인터뷰  >  일반

문근영 “주연 부담 견뎌야… 내려놓으니 맘 편해요” [인터뷰]

영화 ‘유리정원’에서 순수와 광기의 두 얼굴을 드러낸 문근영. 그는 “평상시에 쓸 수 없는 감정을 연기로 표현해냈을 때 나름의 해방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며 “관객과 그런 감정을 공유하는 것 또한 엄청난 행복인 것 같다”고 말했다. 리틀빅픽처스 제공
 
영화 ‘유리정원’의 한 장면.




“아역 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배우가 자신을 작품 속 캐릭터라고 믿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고. 역할과 자신을 동일시하면 안 된다는 의미죠. 그 말을 항상 곱씹게 돼요. 그만큼 더 의식하고 경계하는 것 같아요.”

배우 문근영(30)은 매번 작품 안에 온전히 빠져든다. 25일 개봉하는 영화 ‘유리정원’(감독 신수원)에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극 중 연기한 재연이 실제 그와 겹쳐 보이는 건 그런 이유에서일 테다. 자신의 순수성을 끝내 지켜내는 강인함마저 닮았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문근영은 “나와 재연의 감정을 구분 짓는 게 어려웠다”며 “그만큼 경계선이 모호했다. 연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실제 내 감정을 표현했던 것 같기도 하다”고 고백했다.

“(인물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캐릭터의 감정이 남아있을 때 당혹스럽거든요. 재연은 유독 그런 경향이 컸던 것 같아요. 표출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는 인물이라 제 마음에도 한이 남았나 봐요(웃음).”

‘유리정원’은 사람도 광합성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도가 타인의 욕망에 의해 꿈을 짓밟힌 뒤 무명 소설가를 만나며 벌어지는 미스터리 판타지다. 문근영이 연기한 주인공 재연은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혈액을 연구하는 과학도. 신체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그는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한 뒤 마음의 문을 닫는다.

문근영은 “시나리오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마치 소설책 한 권을 읽은 듯했다”며 “재연 캐릭터를 표현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이 친구의 마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보듬으며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과 그 감정의 흐름을 잘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출연 결정 당시 문근영의 마음 상태가 그랬다. 위로가 필요했다. 열두 살이던 1999년 데뷔해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남모를 고민에 시달려 온 그다. “주연을 맡으면 늘 책임이 뒤따라요. 언제나 부담스럽고 무서운데, 그렇다고 책임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견디고 버티는 것도 제 몫인 것 같아요.”

드라마 ‘가을동화’(KBS2·2000) ‘명성황후’(KBS2·2001), 영화 ‘장화, 홍련’(2003) ‘어린 신부’(2004) 등의 연이은 성공에 그의 이름 앞에는 ‘국민 여동생’ 타이틀이 붙었다. 문근영은 “그저 연기가 좋아서 배우가 됐는데 과분한 사랑을 받은 것 같다. 나는 오로지 ‘연기 잘 하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일념밖에 없었다”고 했다.

“국민 여동생이란 말이 싫었던 적도 있어요. 제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죠. 근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냥 인정하면 편해.’ 반발심에 억지로 벗어나려 하는 게 오히려 건강하지 못한 방법인 것 같아요. 그대로 둬도 괜찮지 않을까요. 어차피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을 테니.”

올 초 급성구획증후군(근육 압력 상승으로 인해 통증이 생기는 질환)을 앓은 문근영은 공연 중이던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중단하고 한동안 치료에 매진했다. “지금은 많이 건강해졌어요. 거의 다 회복된 상태예요. 이번에 많이 놀란 건, 정말 많은 분들이 저를 걱정하고 응원해주신다는 거였어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투병 이후 겪은 심경 변화는 배우 인생에 긍정적인 터닝 포인트가 됐다. 그동안 포기해왔던 걸 다시 해보겠다는 의지와 안달복달하던 마음을 내려놓는 여유가 생겼다. 무언가 배우고, 더 넓은 곳을 여행하고, 예쁜 연애도 하고 싶다고. “작은 생각이 달라지니 많은 부분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요(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