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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이명희] 존엄사



안락사(euthanasia)는 좋은 죽음(good death)을 뜻하는 그리스어 ‘eu thanatos’에서 유래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데도 고통 속에 삶을 연장해야 하는 것은 말기 환자들에게는 죽음보다 못한 일일 수 있다. 가족들에게도 희망고문이다.

지난 7월 영국에서는 희귀병에 걸린 한 살배기 찰리 가드를 두고 생명윤리 논쟁이 벌어졌다. 병원 의료진이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자 찰리 부모는 미국으로 옮겨 치료를 받겠다고 맞섰다. 3심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법원은 ‘존엄한 죽음이 찰리에게 최선의 이익’이라며 의료진 손을 들어줬다. 찰리의 생명을 유지해 달라는 부모의 호소에 프란치스코 교황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지원사격에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존엄사 논쟁이 본격화한 것은 1997년 12월 보라매병원 사건 때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던 환자의 가족이 강하게 퇴원을 요구하자 병원 측은 사망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은 뒤 환자를 퇴원시켰다. 인공호흡기를 떼자 환자는 사망했고 법원은 2004년 가족과 의사에게 각각 살인죄와 살인방조죄로 유죄를 선고했다.

존엄사를 인정하는 첫 판결이 나온 것은 2008년이다. 그해 2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1년째 식물인간 상태에 있던 김모 할머니의 가족이 기계장치로 생명을 연장하지 않는 것이 평소 환자의 뜻이라면서 치료 중단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같은 해 11월 존엄사를 인정하는 첫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1월 국회는 존엄사 조건과 절차를 다룬 연명의료결정법, 일명 웰다잉(well-dying)법을 통과시켰다.

내년 2월 이 법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23일부터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일본에서는 몇 년 전부터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지와 장례 절차, 장례식 참석자 명단, 유언 등을 기록할 수 있는 엔딩노트가 유행했다. 인생의 종말을 준비하는 ‘슈카쓰(종활·終活)’도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임종체험이나 유언장 사전 작성, 생애 소원을 담은 버킷 리스트 등이 유행하고 있다.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김광림 시인은 나이 예순이 넘으면 덤이라 했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삶이다. 지금 이 순간 가슴 뛰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크리스천들에겐 죽음도 삶과 다르지 않다.

글=이명희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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