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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천지우] 기분이 좋아지는 역사



최근 중국 시진핑 정권은 8년으로 명문화돼 있던 항일전쟁 기간을 14년으로 늘렸다. 일본에 맞서 싸운 기점을 1937년 노구교(盧溝橋) 사건에서 1931년 만주사변으로 돌연 바꾼 것이다. 항일전쟁 기간을 6년 더 늘리면 그만큼 오래 피해를 입고 줄기차게 투쟁해 왔음이 강조된다. 과거사 문제로 일본을 공격할 빌미도 더 생긴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당시 중국은 내전 상태여서 단순한 중·일 갈등 구도가 아니었고 관계 개선을 모색한 시기도 있었다’며 ‘양국 관계를 14년 전쟁으로만 정의하면 전체상을 볼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태평양전쟁 전후의 불명예스러운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일본 정치가들의 언행이 계속되는 것도 우려스러운 풍조’라고 썼다. 역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중국과 편협한 역사관을 드러내는 일본 정치인들을 싸잡아 비판한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라이벌로 부상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지난달 1일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모식에 관례를 깨고 추도문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면서 “(조선인을 학살했다는 사실은) 역사가가 풀어낼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학살 자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다. 불명예스러운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정치가의 언행이다.

조국의 과거사가 영광스러운 일로 가득하고 과오나 치욕이 없다면 국민은 당연히 기분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한 나라의 역사에 ‘사이다’(통쾌한 일)만 있을 리 없고 ‘고구마’(답답한 일)도 있기 마련이다. 고구마를 애써 무시하고 사이다만 부각시키는 행태는 속된 말로 ‘국뽕’(국가+히로뽕, 근거 없는 역사 미화)일 뿐이다. 별로 설득력도 없다.

국내 한 일간지는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맞아 대한제국을 재조명하는 기획기사를 냈다. 여기에 참여한 학자들은 “대한제국은 무기력하지 않았고 군사강국·경제대국이었다. 고종도 무능한 황제가 아니었다. 대한제국은 망하지 않고 대한민국으로 이어졌으니 망국의 책임도 없다”고 주장했다.

괜찮은 나라였는데 운이 나빠서 저 사악한 일본에 강점됐을 뿐이라는 얘기다. 황당하고 기분이 좋아지지도 않는다. 나라가 힘이 없고 지도자가 무능해서 국권을 뺏긴 것 아닌가. 악질적 외부의 탓으로만 돌리면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나. 치욕의 과거는 외면하지 말고 그 전말을 깊이 새겨야 다시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글=천지우 차장,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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