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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전 세계 800개… 미군기지를 생각한다



왜 우리나라에 미군이 주둔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일부 독자는 위험한 발언이라고, 황당한 문제 제기라고 여길 것이다. 대번에 ‘종북’ 딱지부터 붙이려드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저 물음은 한국사회에서 얼마간 불경스러운 발언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불문곡직하고 미군의 한국 주둔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이 왜 그토록 많은 국가에 군사기지를 두는지 생각해볼 수도 있어야 한다. 어쩌면 이 질문에서 뻗어나간 고민은 세계 평화나 한반도 문제에 중요한 힌트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미국 아메리칸대 인류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바인이 펴낸 ‘기지 국가’는 미국의 해외 군사기지가 일으키는 각종 문제점을 파헤친 역작이다. 저자는 미국이 나라 밖에 세운 군사기지 60여곳을 직접 취재해 이 책을 썼다. 그는 한국어판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저는 한국에 있는 모든 미군 기지를 즉각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미국 바깥에 있는 모든 미군 기지를 즉시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미국의 해외기지가 존재해야 하는 필요성을 일일이 세심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일단 미국이 해외에 얼마나 많은 기지를 두고 있는지 살펴보자. 미국은 독일(174개) 일본(113개) 한국(83개) 등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 800개 넘는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역사상 그 어떤 제국도 이렇진 않았다. 저자는 “미국이 해외 곳곳에 무질서하게 세워놓은 기지들을 검토하면 미국이 어떻게 영구 전시 체제에 놓여 있었는지, 미국 경제와 정부가 어떻게 지속적인 전투 준비에 의해 지배되어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군기지가 각 나라에서 어떤 문제를 야기했는지 일별한다. 환경을 파괴하고 현지 주민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고 기지 유지를 위해 독재 정권과 결탁한 사례가 등장한다. 기지 건설은 냉전 시대 공산주의의 확장을 막기 위한 ‘전진 전략’의 일환이었다는 설명도 곁들인다.

한국 사례도 비중 있게 실려 있다. 기지 주변 성매매 산업을 다룬 챕터 ‘섹스를 팝니다’가 대표적이다. 한국 정부가 사실상 포주 역할을 했다는 부끄러운 진실이 실려 있다.

핵심은 ‘미군 주둔=전쟁 억지력 증대’라는 공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군 주둔이 되레 상대국을 자극해 군사적 긴장감만 배가시킨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미국은) 불필요한 기지를 전부 폐쇄하고 한편으로는 세계 곳곳의 갈등을 군사적인 방법이 아니라 정치, 경제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외교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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