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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지방에 계신 시장·군수님들께 고함



일자리를 좇아 대도시로 향하던 산업화 시절 이촌향도(離村向都)의 행렬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방에 번듯한 일자리가 많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지방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너나없이 떠드는 ‘국토균형발전’의 정체는 무엇일까.

마강래(46)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가 펴낸 ‘지방도시 살생부’는 이 질문들을 깊숙이 파고든 문제작이다. 책에는 어떻게든 생존하려고 악전고투하는 지방 중소도시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도시’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군(郡) 단위 행정구역까지 아우른 내용이다. 앞부분엔 지방의 공동화(空洞化) 문제가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내용이 이어지는데, 이건 수많은 기사나 책에서 봤던 얘기다. 눈길은 다른 데로 쏠린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얼마나 헛물만 켜고 있는지 상술한 대목이다.

지자체의 고군분투가 ‘헛발질’에 그치는 대표적 케이스로는 무엇을 들 수 있을까. 지방의 쇠퇴 패턴은 어느 곳이나 엇비슷하다. 산업의 쇠퇴→일자리 감소→소비 위축→상권의 쇠락이 쇠퇴의 공식이다. 지자체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가장 먼저 ‘산업단지 조성’이라는 카드를 들이민다. 각종 세제 혜택을 위시한 수많은 ‘당근’을 제시하며 기업을 유치하려 든다.

충남 당진, 전남 목포, 충북 영동 등 수많은 지자체가 산업단지를 조성했다. 하지만 분양률은 기대치를 밑돈다. 많은 산업단지는 “재정을 좀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지자체의 또 다른 카드는 축제를 개최하는 것이다. 관광은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분야다. 2014년 기준 전국 지자체에서 개최한 축제는 1만5000개 수준에 달했다. 하지만 흑자를 낸 행사는 거의 없었다. 마 교수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은 축제가 열리고 있는 상황은 지방 도시들이 겪는 어려움의 역설적 표현일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지방의 공동화 현상이 야기할 문제는 한두 개가 아니다. 무엇보다 재정의 비효율성이 심각해진다. 사람이 적게 산다고 공공서비스의 양을 무작정 줄일 순 없지 않은가. 10만명 살던 도시의 인구가 1만명이 됐다고 우체국 보건소 학교를 대거 없앨 순 없다. 마 교수는 20년 뒤면 지자체의 30%가 기업으로 따지면 ‘파산’ 상태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그는 “기능을 상실한 30%의 지자체에는 인공호흡기가 달릴 것이다. 천문학적 액수의 연명치료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짊어지게 될 부담이다”라고 적었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세 가지다. ①지방 중소도시들의 외곽 개발을 막아야 한다. ②흩어진 도시의 기능을 도심으로 모아야 한다. ③중소도시에 맞는 일자리 육성이 필요하다. 마 교수는 이러한 해법이 구현된 도시를 ‘압축도시’라고 명명한다.

어찌 보면 가능할까 싶은 조언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지역이 골고루 잘 살 수 있다는 ‘국토균형발전’ 같은 미명의 슬로건보다는 훨씬 더 구체적이어서 귀가 솔깃해진다.

책에는 엉터리 정책으로 지자체나 정부의 곳간을 축내는 도시들 지명이 계속 등장한다. 지금 이 순간도 자신의 도시를 살려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 지역 지자체 관계자에게 이 책은 마뜩잖을 것이다. 저자의 가차 없는 비판이 야박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지방도시 살생부’를 읽으면 지방을 살리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 하나 눙치는 법 없이 빈틈없는 논리로 해법을 제시하는 파워풀한 책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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