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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매일 1.5% 수익” 비트코인 사기… 한국인 700억 뜯겼다



英 맨체스터에 투자사 설립
배우가 전문가 가장 홍보

올 7월부터 국내투자자 모집
처음엔 매일 수익금 지급
지난달부터 인출도 안돼
주부·퇴직자 등 주로 피해


동유럽 출신 배우를 가상화폐 ‘비트코인’ 투자 전문가로 내세워 전 세계 5만여명의 투자자로부터 1100억원 이상을 편취한 국제 사기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만 2000여명이 투자에 나서 700억원가량을 날린 것으로 나타났다. ‘고정 수입’이 없는 주부, 퇴직자, 자영업자 등이 주요 피해 대상이었다.

‘컨트롤 파이낸스(Control Finance)’는 지난해 9월 8일 영국 맨체스터에 투자회사로 등록한 뒤 하루 1∼1.5%의 수익금을 주겠다며 투자자 모집에 나섰다. 수수료도 없고, 신규회원을 모집해 오면 그 투자금의 25%를 ‘커미션’으로 지급하는 전형적인 다단계 폰지(신규 투자자의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의 수익금을 지급하는 돌려막기 형태의 사기) 투자 방식이다.

사기단은 무명 배우를 ‘젊은 IT 전문가’로 가장해 투자자를 꾀어냈다. 국민일보가 확인한 홍보영상에는 20, 30대로 보이는 사업가가 자신을 ‘벤저민 레이놀드’라고 소개하며 유창한 영어로 “1년 365일 일주일에 7일 동안 이익을 낼 것”이라고 언급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레이놀드는 동부 유럽 발트해 연안 끝에 있는 에스토니아공화국의 ‘엘더블유 필름’ 소속 배우였다. 외국 배우의 그럴싸한 연기에 상당수 투자자가 ‘깜빡’ 속은 것이다. 영국 맨체스터의 주소지를 찾아가봤지만 컨트롤 파이낸스란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기단은 영국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등 66개국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범죄 수익 대부분은 한국에서 나왔다. 사기단은 지난 4월 한국인 모집책 227명을 동원, 7월부터 본격적인 투자자 모집에 나섰고, 두 달여 만에 2000여명으로부터 누적 투자금 700억원을 편취했다.

사기단은 매일 1∼1.5%의 수익금을 비트코인 계좌로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미끼’도 던졌다. 실제 수익이 발생하자 입소문이 퍼졌다. 충북 청주에서 자영업을 하는 권모(55·여)씨는 첫 투자 때 약 500만원을 투자해 이익금으로 하루 6만∼7만원을 받았다. 약속대로 수익금이 들어오자 권씨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대출받아 총 1300만원을 투자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유한웅(24)씨는 “평생 이익금을 준다는 말에 혹했다”며 “지난달 초 1100만원을 투자해 950만원을 잃었다”고 했다. 대전 유성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허모(51)씨는 “지인이 홍보영상을 보여주면서 ‘회사 대표가 투자 귀재’라고 접근했다”며 “깔끔한 외모와 자신 있는 말투에 속아 3000만원을 대출받아 투자했다”고 말했다. 투자자를 모집하면 ‘커미션’을 주는 다단계 방식이 피해를 키웠다.

한국인 모집책은 투자자가 모인 채팅방에서 “수익금이 얼마인지 공개하면 커피 기프티콘을 주겠다” “수익금을 가장 많이 낸 사람에게 비트코인을 주겠다”고 투자를 부추겼다.

투자자들은 사기단이 지난달 13일 돌연 자취를 감추면서 패닉에 빠졌다. 회사 대표와 최상위 모집책은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잠적한 상태다. 법무법인 정동국제는 피해자들을 모아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이곳 서동희 변호사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익을 보장하며 가상화폐에 투자를 권유하는 것은 대부분 사기”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최근 가상화폐 가격이 다시 오르면서 관련 범죄도 늘어가고 있다. 경찰청이 지난 7월부터 특별단속을 벌인 결과 두 달 만에 28건의 가상화폐 관련 범죄가 적발됐다. 하지만 가상화폐를 관리·감독하는 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고 주무 부처도 불분명한 상태다.

글=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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