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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강주화] 인생의 저녁에



지난해 이맘때 미국 닉 카사베츠 감독의 영화 ‘노트북’이 상영됐다. 평생 한 여자를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다. 재개봉임에도 18만명 넘게 관람해 극장가에서 큰 화제가 됐다. 영화는 석양에 물든 호숫가에서 시작된다. 한 요양원이 배경이다.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한 할머니에게 노트에 적힌 젊은 남녀의 연애 얘기를 들려준다.

단풍이 들어가는 가을 풍경을 배경으로 책을 읽어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다정하다. 두 사람은 부부이지만 기억을 잃은 할머니는 그가 남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아내를 간병하기 위해 함께 입원한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걱정스러워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지만 그는 말한다. “내 집은 너희 어머니란다.”

이 영화에 감동을 받았다는 이들도 많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로맨스라는 악평도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이 영화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진을 우리 신문에서 보게 됐다. 사진 제목은 ‘아름다운 당신’. 노부부가 창가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창밖으로 나무와 먼 산이 가을 빛깔로 물들어갔다. 사진 아래에는 지난해 봄 요양병원에 입원한 아내를 간병하기 위해 남편도 함께 입원했다는 설명이 있었다. 사진을 찍은 선배에게 부부 얘기를 더 자세히 들었다. 남편은 매일 “여보,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요”라고 말하며 아내의 머리를 정성스레 빗어주고 휠체어를 조심조심 밀어준다. 부부는 병원에서도 금실이 좋기로 유명하단다. 남편은 남녀가 같은 병실을 쓸 수 없다는 병원 규정 때문에 아내 바로 옆 병실을 쓰고 있다고 했다. 영화 노트북 이야기가 실재하는 경우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치매 환자는 2013년 40만명에서 2015년 50만명으로 급증했다. 지금은 70만명에 가깝다는 추산이다. 사진 속 부부는 경제적 여력이 있기 때문에 높은 병원비를 감당하며 시설이 비교적 좋은 곳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많은 노인들은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8.8%에 달한다. 빈곤율은 중위 소득의 50% 미만인 비율이다. OECD 국가 평균의 네 배가 넘는다. 몸이 아프거나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은 대부분 정신적으로 외롭고 경제적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 부부의 사진을 책상 앞에 붙인 뒤 상상해 본다. 정부가 발표한 치매국가책임제가 창가에서 평화롭게 ‘인생의 저녁’을 보내는 부부를 많이 만들어내는 걸.

강주화 차장,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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