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리-장동건-이제훈, 영화를 사랑한 4인3색 대담 [22회 BIFF]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 행사에서 팬들을 직접 만난 배우들. 일본 여배우 나카야마 미호(왼쪽)와 한국의 문소리가 지난 13일 행사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같은 날 무대에 오른 장동건과 지난 14일 대담자로 나선 이제훈(왼쪽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폐암 투병 중 참석한 신성일
“영화인이라는 자부심 갖고 있다”

‘여배우는 오늘도’ 문소리
“꽃이 아닌 뿌리·열매 될 수 있어”

5년 만에 부산 찾은 장동건
“문화예술에 정치 개입 없기를”

‘박열’ ‘아이 캔 스피크’ 이제훈
“제 안에 보여드릴 게 너무 많다”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재기를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던 지난해와 달리 22회째를 맞은 올해 영화제는 다소 활기를 되찾았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발길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

스타들의 방문은 시네필(Cinephile·영화광)들의 흥을 한껏 돋웠다. 올해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 신성일(80)은 폐암 3기 투병 중에도 영화제에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의사도 기적적이라 할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는 그는 “난 ‘딴따라’가 아니다. 종합예술의 한가운데 있는 영화인이라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15일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영화제 기간 중 해운대 비프빌리지에서는 국내외 스타들과 함께하는 행사가 매일 진행된다. 지난 13일에는 일본 여배우 나카야마 미호(47)와 문소리(43) 장동건(45)이, 14일에는 이제훈(33)이 오픈토크 대담자로 나섰다. 모래사장 위 마련된 간이무대 앞에 옹기종기 모인 관객들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여배우, 여배우를 만나다

‘여배우는 오늘도’의 감독 겸 주연 문소리와 ‘나비잠’으로 영화제 초청을 받은 나카야마 미호는 여배우로 살아가는 힘겨움에 대한 공감대를 나눴다. 미호는 이와이 순지 감독의 멜로 ‘러브레터’(1995)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배우. 부산영화제에 처음 방문한 그는 객석을 향해 극 중 명대사인 “오겡끼데스까(잘 지내나요)”를 외쳐 큰 환호를 받았다.

미호는 “부산영화제의 분위기가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 기분이 굉장히 들뜨는 것 같다”면서 “20여년이 지나도록 ‘러브레터’를 기억해주시는 한국 팬들께 감사하고 기쁘다”고 인사했다.

‘여배우는 오늘도’에 대한 문소리의 설명을 듣던 미호는 “일본에서도 나이 들수록 역할이 적어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공감했다. 그는 “나는 현장에서 ‘여자’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한 적 한 번도 없다”며 “여배우가 중심인 영화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문소리는 “어떤 시상식에서 제게 상을 주면서 ‘여배우는 영화의 꽃이라 할 수 있죠. 꽃에게 드리는 상입니다’라고 말하더라. 좋게만 들리지 않았다. 여배우도 거름이나 뿌리 줄기 열매가 될 수 있다. 한국영화에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더 공부하고 가꾸어야겠다”고 했다.

미남 오빠에서 친근한 아빠로

5년 만에 부산을 찾은 장동건은 “안타까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부산영화제가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라며 “더 좋은 영화제로 거듭나는 과정이자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문화예술 전반에 정치적 개입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드라마 ‘아들과 딸’(MBC·1992)로 연기를 시작한 장동건은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그는 “얼마 전 박중훈 선배님이 진행하시는 라디오에 출연했는데, 청취자들이 ‘마지막 승부’부터 ‘친구’ ‘신사의 품격’ ‘브이아이피’까지 여러 작품을 언급하시더라. ‘내가 이렇게 다양한 연령층에 다양한 기억을 남기며 살아왔구나’라는 뿌듯함이 들었다”고 했다.

활동 기간에 비해 작품 수가 많지 않다는 게 못내 아쉽다. 장동건은 “예전에는 너무 신중했던 것 같다. ‘그때 좀 더 저질렀으면’ 싶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그래서인지 부쩍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 ‘창궐’을 촬영 중이고, ‘슈츠(suits)’로 6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할 예정이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두 아이를 둔 평범한 가장. 스케줄이 없을 땐 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곤 한다. “좋은 아빠이자 좋은 남편이고 싶어요. 가정을 꾸려나가다 보면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작은 일상에서 오는 행복감이 굉장히 큰 것 같아요.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하잖아요.”

부산을 녹여버린 열정 배우

이제훈이 등장했을 때의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따가운 가을 햇살 아래 객석을 꽉 채운 팬들은 열렬한 환호로 그를 맞이했다. 반응에 놀란 이제훈은 “여기 다 제 친구들이 모여계신 것 같다”고 에둘러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아낌없는 팬 서비스로 화답했다. 셀카를 찍자는 요청에 스스럼없이 객석 속으로 달려가 경호원들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이제훈은 올해 ‘박열’과 ‘아이 캔 스피크’로 연달아 관객을 만났다. 일제 강점의 역사가 남긴 아픔을 각기 다른 색깔로 풀어낸 작품들. 영화 자체의 만듦새는 물론 중심 배역을 훌륭히 소화해낸 이제훈을 향한 호평이 이어졌다.

이제훈은 “‘박열’을 찍으면서 달라진 마음가짐이 ‘아이 캔 스피크’ 출연으로 이어졌다”며 “관객에게 단순히 희로애락의 감정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얘기했다. 매 작품 캐릭터를 채우고 비우는 과정이 힘들진 않느냐는 질문에는 “아직까지 제 안에 보여드릴 게 너무 많다”고 답했다.

“최근 연달아 작품을 하고 있는데 (저의) 에너지는 충분합니다. 좋은 작품을 만나 연기하는 시간이 기다려져요. 그로 인해 다시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것 같아요. 체력적인 부침으로 인해서 작품 활동을 게을리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웃음).”

부산=글·사진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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