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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명호] 넛지 이론과 댓글 공작



행동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음으로써 그의 ‘넛지(nudge) 이론’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강압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개입’이란 뜻으로 사용했는데, 2008년에 쓴 그의 책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었다. 넛지는 일종의 설득 전략이다. 커뮤니케이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설득커뮤니케이션 분야를 연구했다. 홍보와 PR, 정치선전 등에서 효과 극대화를 위한 설득 기술인 셈이다.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설득의 결과 또는 효과로 기존 태도의 변화, 기존 태도의 강화, 새로운 태도의 형성 세 가지 유형을 꼽는다. 설득을 통해 태도를 바꾸도록 하거나, 원래 생각을 더 단단하게 만들거나,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요소들을 중요한 속성으로 고려하도록 해 새로운 태도를 갖게끔 하는 것이다.

국가정보원과 군사이버사령부가 저지른 정치 댓글은 일탈한 설득 전략이다. 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 대놓고 범죄행위를 한 것에도 놀라지만 그 설득 전략이 너무 조악하고 단순무식한 데 또 한번 놀란다. 정확한 사실관계는 수사기관이 밝히면 되니 기다려보면 되겠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게 있다. 여러 정황에 따르면 국정원 일부에서 일탈행위가 저질러졌고, 이게 군으로까지 은밀하게 확산됐다. 그렇다면 심리전이란 명분 아래 치러진 저질 설득행위가 효과 있었다는 판단을 했다는 뜻이다. 아마 이런저런 통계나 평가를 꿰맞추거나 조작해 ‘우리가 잘하고 있고 좋은 효과가 있다’는 오로지 상부 보고만을 위한 내부 분석이 있었을 게다.

설득으로 기존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은 기존 태도를 강화시키는 것보다 어렵다. 정치 댓글이나 문자폭탄이 비이성적 열성지지자들에게는 사이다겠지만, 이로 인해 태도를 바꿨다면 자신의 수준을 의심해봐야 한다. 은밀하게 정치 댓글 공작을 하는 이들도 노벨상을 받은 넛지 이론 좀 들여다보고 앞으론 수준을 약간 높이는 게 어떤가.

글=김명호 수석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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